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기주봉 12

강변호텔(블루레이), 홍상수 김민희 이야기를 보다

'강변 호텔'(2018년)은 홍상수 감독의 23번째 장편 영화다. 그의 작품이 언제나 그렇듯 이렇다 할 사건 없이 이상한 대화로 흘러가는 심드렁한 내용이지만 제71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제56회 히혼 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과 각본상, 남우주연상 등 해외에서 여러 상을 받았다. 다만 이번 작품이 약간 다른 것은 남녀 간의 강박적 사랑에 목을 맸던 예전 작품들과 달리 한 사람의 죽음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어찌보면 죽음에 이르는 여정 같은 작품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홍 감독의 특징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일반적인 작품이라면 병에 걸리거나 자살로 내몰릴만한 우울한 일들을 겪는 등 인물을 둘러싼 죽음의 징후가 보일 텐데, 이 작품 속 주인공은 그야말로 멀쩡하게 있다가 느닷없이 죽음을 맞는다. 그..

풀잎들 (블루레이)

홍상수 감독의 22번째 영화 '풀잎들'(2018년)은 사랑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등장인물들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과연 사랑이란 무엇이고, 사랑의 결과처럼 나타나는 결혼에 대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이 과정을 영화는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화자인 여주인공(김민희)이 같은 공간을 중심으로 관찰하는 여러 사람들의 일화를 통해 사랑과 결혼에 대한 각자의 시각을 드러낸다. 재미있는 것은 김민희와 이들의 관계다. 김민희가 직접 인연이 얽히는 주변 인물은 동생 커플뿐이다. 나머지는 모르는 사람들이어서 김민희는 그저 관찰자의 위치에 머문다. 아마도 홍 감독은 이를 통해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의견들을 객관화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직접적인 인연이 얽히는 사람들은 중립적 입장을 갖는 것이 어려울 수 있기..

조용한 가족(블루레이)

영화 '조용한 가족'(1998년)은 잔혹코믹극을 표방한 김지운 감독의 데뷔작으로, 그의 작가적 역량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다. 잔혹코믹극이란 무섭고 끔찍한 내용이지만 뜻하지 않은 상황이 가져오는 부분 때문에 역설적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영화를 말한다. 예를 들어 절벽에서 떨어질 뻔한 순간에 아슬아슬하게 나뭇가지를 움켜잡아 한 숨 돌렸는데 우지직 하면서 나뭇가지가 부러지거나, 킬러가 지각을 하는 바람에 엉뚱한 사건이 벌어지는 식이다. 그만큼 김 감독은 상충되는 웃음과 공포의 순간을 병치하는 영리한 구성으로 반전을 꾀하며 기발한 재미를 줬다. 어찌보면 이는 곧 예상하지 못했던 트릭이기도 하지만 기분좋게 웃을 수 있는 장난같은 속임수다. 이런 트릭이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잘 꿰어맞춘 이야기의 연결성 덕분이다. ..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블루레이)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은 영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영화를 다른 방식으로 만들 수 있고, 독특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년)도 마찬가지. 이 작품은 구성이 독특하다. 똑같은 이야기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눠 복기하듯 두 번 찍었다. 내용은 강연 때문에 수원에 내려간 영화감독이 한 여인을 만나 하룻밤의 인연을 만드는 이야기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르다. 동일한 인물들이 동일한 시간대에 똑같은 사건을 만들지만 디테일 및 인물들의 관계 형성이 미묘하게 어긋난다. 물감의 색, 나누는 대화, 거니는 길, 옷차림 등에서 약간씩 다른 부분들은 결국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시각의 차이, 생각의 차이를 보여준다. 또는 기억의 차..

친구2

봉준호 감독이 '설국열차' 개봉 후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영화 중 진정한 최고 흥행 영화는 2001년 상영한 곽경택 감독의 '친구'로 봐야한다는 얘기를 했다. 역대 톱 10에 든 영화 중 유일한 18세 미만은 볼 수 없는 연소자 관람불가 영화였기 때문. 봉 감독은 "지금처럼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동시에 똑같은 영화가 여러 편 걸리는 것도 아니고,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적은 스크린에서 성인 관객으로만 88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은 지금으로 치면 1,700만명 이상의 관객이 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당시 '친구' 신드롬은 젊은 사람부터 나이든 사람까지 극장을 찾을 만큼 대단했다. 총각시절 가보고는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다는 40, 50대가 수두룩했던 것은 '친구'가 가진 향수 때문이었다. 후크를..

영화 2013.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