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김규리 5

풍산개

전재홍 감독의 '풍산개'는 김기덕 사단이 만든 영화여서 관심을 끌었다. 말 그대로 제작, 각본을 김기덕 감독이 맡고 연출은 유명한 김흥수 화백의 외손자인 전재홍이 담당했다. 영화는 아니나다를까, 김기덕의 색깔이 짙다. 우선 소재부터 독특하다. 남과 북을 새처럼 자유롭게 오가며 돈받고 심부름을 해주고, 사람도 빼오는 특이한 인물이 주인공이다. 과거 '악어' '야생동물보호구역'처럼 일상에서 보기 힘든 특이한 인간군상에 집착하는 김기덕의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된 영화다. 다만 김기덕 특유의 잔혹 영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의 영화를 여성들이 불편해 한다는 점 때문에 의도적으로 수위를 낮춘 것도 있지만, 상황보다는 캐릭터 내면에 집착하는 전재홍의 색깔이 많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소재가 독특하다보니 이야기를 끝까지..

사랑이 무서워

국내에서 화장실 코미디 연기는 가히 임창정을 따를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정우철 감독은 '사랑이 무서워'(2011년)의 주연을 제대로 골랐다. 임창정은 어수룩한 청년 상열 역을 맡아 미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애를 쓴다. 순진한 청년의 사랑을 이용만 하던 여인은 나중에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뜬다는 그렇고 그런 내용이다. 뻔한 내용을 채우는 것은 임창정 특유의 넉살과 화장실 개그다. 그가 출연한 일련의 작품처럼 똥과 민망한 성적 판타지를 풀어 웃음을 유발한다. 더러 웃음이 터지는 장면도 있지만 '색즉시공'에 미치지 못한다. 이야기 또한 예측 가능한 전개로 뒤로 갈 수록 힘이 빠진다. 로맨틱 코미디로 보기에는 러브 라인이 부족하고, 페이소스가 깔린 블랙 코미디로 보기에는 메시지의 전달력이 떨어진다...

하하하 (DVD)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2009년)는 제목 그대로 그 황당함에 하하하 웃게 되는 영화다. 언제나 그렇듯 홍 감독 특유의 엉뚱함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그의 영화를 여러 편 보았으니 이제는 익숙할 만도 한데, 언제나 그렇듯 그 엉뚱함이 낯설면서도 유쾌하다. 이 영화는 구성이 독특하다. 청계산에서 우연히 만난 선배와 후배가 술잔을 기울이며 자신들이 최근 겪은 일을 이야기하는 식으로 풀어간다. 그들이 각각 따로 경험한 낯선 이야기 속에는 공교롭게 두 사람이 동시에 존재한다. 서로가 서로를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한 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경험을 한 셈이다. 참으로 희한하면서도 기발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주체적인 삶이 타인에게는 객체일 수 있고, 반대로 그들에게는 아무 상관없는..

하하하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그렇듯 허허롭다. 영화 중간 어디서나 끊어도 이야기 전개에 지장이 없는 내러티브는 도대체 스토리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헷갈린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받은 '하하하'도 마찬가지. 캐나다로 떠나기 앞서 선배와 등산을 간 주인공이 청계산 중턱에서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다. 영화는 주거니 받거니 건네는 술잔처럼 두 사람의 이야기를 오가며 진행된다. 화자의 관점은 둘이지만, 사실 그 둘이 풀어놓는 이야기는 같은 내용이다. 공교롭게 같은 기간 통영에 머문 두 사람은 서로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지만 같은 주변인물들을 공유하며 서로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봤던 것. 그렇게 같은 사건이 다르게 다가올 수 있는 것 또한 세상살이의 묘미요, 다양성의 ..

영화 2010.06.13

여고괴담

박기형 감독의 '여고괴담'(1998년)은 우리 공포물 가운데 손에 꼽을 만한 빼어난 수작이다. 감독이 직접 쓴 탄탄한 시나리오와 더불어 입시위주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 메시지 전달력이 뛰어났다. 특히 공포물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익숙한 이야기와 환경을 다뤘기 때문이다. 화장실 귀신처럼 오래된 학교에 한두 가지씩 떠도는 귀신 이야기와 학교라는 건물이 주는 위압감과 폐쇄감을 적절히 이용했다. 예전 두발 및 교복자율화 이전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유난히 을씨년스럽던 풍경이 떠오른다. 불 꺼진 어두침침한 나무 마룻바닥 복도, 바람에 연통이 흔들리며 끊임없이 울려대던 삐걱거리는 쇳소리, 한낮에도 그늘이 져 해가 들지 않는 외따로 떨어진 화장실 건물, 을씨년스러운 뒷산과 이어진 쓰레기소각장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