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김기덕 15

파란 대문(블루레이)

영화 '파란 대문'(1998년) 하면 비운의 두 인물을 빼놓을 수 없다. 김기덕 감독과 주연을 맡은 이지은이다. 1971년생인 배우 이지은은 2021년 3월 8일 자택에서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등져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향년 49세. 고인이 된 이지은에 얽힌 인연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서울로 이사와 용산에서 자란 그는 일본 호세이대학 일문학과를 졸업한 뒤 '금홍아 금홍아'와 '파란 대문'에 주연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런데 2000년 12월 벤처기업 인츠닷컴의 이진성 대표와 결혼하며 영화계를 떠났다. 개인적으로 이지은의 전 남편 이진성 대표와 인연이 있다. 그가 광고 마케팅 사이트 '보물찾기'로 유명한 인츠닷컴을 운영하던 시절 취재 때문에 여러 번 만났다. 느닷없이 이 대표가 유명 ..

수취인불명 (블루레이)

'수취인불명'(2001년)은 김기덕 감독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극명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빈 집' '섬' '악어' '나쁜 남자' 등 김감독의 다른 작품들이 개인의 내면 세계를 깊게 파고든 반면 '수취인불명'은 분단국가의 일그러진 사회상을 개인의 삶에 투영했다. 그 바람에 영화는 다른 작품들보다 무겁고 우울하며 온통 회색빛이다. 제목인 수취인불명은 흑인 혼혈인 창국(양동근)의 엄마(방은진)가 창국 아버지인 미군에게 날마다 편지를 보내지만 늘 수취인불명으로 돌아오는데서 유래했다. 아울러 어느 쪽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떠도는 불안한 등장인물들의 삶을 암시하기도 한다. 혼혈인 창국, 한쪽 눈을 다친 은옥, 주한 미군으로 파견됐으나 왜 미국도 아닌 남의 땅을 지키기 위해 훈련을 하는 지 의문을 느끼는 제임스 ..

나쁜 남자 (블루레이)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2001년)는 '섬' 이후 가장 충격적이며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영화다. 영상이나 내용이 주는 충격은 여성의 자해 장면이 너무나 끔찍했던 '섬'이 더 강했지만 좋아하는 여인을 파멸로 몰아 넣어 소유하려는 극단적인 사랑이라는 구성이 '섬' 못지 않게 충격적이고 자극적이었다. 이 작품이 대중적으로 성공한 것은 사실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다른 곳에 있었다. 영화 개봉 전 TV 드라마 '피아노'가 인기를 끌었는데 여기 주인공이었던 조재현이 이 작품에 주연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TV 드라마에서 인기를 끈 스타 배우의 후광을 톡톡히 본 셈이다. 하지만 그를 걷어내더라도 이 작품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다. 나름 김 감독의 주제 의식이 명확하게 표현됐고 파격적인 소재..

섬 (블루레이)

김기덕 감독의 네 번째 영화 '섬'(2000년)이 DVD로 국내 출시된 것은 2004년이다. 미국보다 1년 늦게 출시됐는데, 그때까지 나온 김기덕 영화 중에 '섬'과 '나쁜 남자'를 가장 좋아한다. 이 작품은 그때까지 가학, 잔혹 영상으로 대표되는 김감독 작품답지 않게 영상이 아름다워 눈길을 끌었다. 이전 작품들도 그림을 그렸던 김 감독의 특성을 십분 살려 회화적 느낌을 강조하긴 했지만 서정적이거나 아름다운 영상은 이 작품이 한 수 위다. 이전 작품들에서 그가 승부를 걸었던 것은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와 배우들의 강한 연기였다. 아무래도 제작비의 한계상 영상에 공을 들이고 싶어도 여건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다르다. 고즈넉히 안개가 깔린 거대한 저수지 위로 낚시집들이 떠 있는 풍경은..

악어

1996년, 우연히 비디오가게에서 독특한 표지에 끌려 집어든 비디오 테이프 '악어'(1996년)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신선하면서도 놀라운 이야기, 특이한 영상과 캐릭터를 보여준 그 작품은 김기덕이라는 감독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우선 김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가 시선을 끈 것은 머구리라는 독특한 소재였다. 머구리란, 잠수부를 뜻하는 옛말이다. 단순히 물 속에 들어가 일하는 잠수부가 아니라 물 밑바닥까지 내려가 난파선 인양이나 시신을 건져내는 궂은 일을 한다. 김 감독이 '악어'에서 그린 머구리는 그 중에서도 시체 인양을 전문으로 한다. 한강다리에서 투신한 사람들의 시신을 뒤져 금품을 가로채거나 유족들에게 돈을 받고 시신을 건져 올린다. 그야말로 험하디 험한 삶을 사는 주인공 앞에 한 여인이 투신하며 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