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민규동 6

끝과 시작

민규동 감독의 '끝과 시작'(2013년)은 옴니버스 영화 '오감도'에 수록된 같은 제목의 네 번째 에피소드를 확대한 작품이다. 내용은 큰 줄거리는 같지만 일부 소소한 부분이 달라졌다. 단편은 재인(황정민)과 나루(김효진)가 자동차에서 정사를 벌이다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장편은 재인의 아내인 정하(엄정화)가 자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재인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또 재인과 나루의 이야기가 실은 동창회에서 만난 재인이 정하에게 구상 중인 작품을 들려주는 내용이다. 즉 액자 소설처럼 피카레스크식 구조를 갖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민 감독은 이를 상상이 현실로 되풀이되는 식으로 구성했다. 특히 과거 재인이 정하에게 들려준 상상 속 이야기가 미래에 재인과 정하가 결혼한 뒤 현실화된..

오감도

'오감도'(2009년)라는 제목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다섯 감독이 그린 그림이라는 의미와 사람의 오감을 자극하는 영화라는 이중적인 뜻이다. 이 작품은 변혁, 허진호, 유영식, 민규동, 오기환 등 5명의 중견감독이 하나의 주제를 갖고 각자의 스타일로 각기 다른 이야기를 만든 옴니버스 영화다. 이들이 정한 주제는 '에로스'다. 아무래도 사랑이 인간의 감각을 총동원하는 일인 데다 사람마다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다섯 감독은 독특한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 시나리오부터 배우 섭외, 연출, 편집 등은 각 감독들이 각자의 개성대로 하고 배우들의 각 에피소드 간 교차 출연, 각 에피소드의 소재 선택 등은 모여서 토의를 거쳐 정했다. 따라서 전체 주제의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저마다 다른 개성 강한 ..

내 아내의 모든 것 (블루레이)

민규동 감독의 '내 아내의 모든 것'(2012년)은 소통을 다룬 영화다. 부부가 어느 순간 대화가 줄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든다. 영화 속 아내(임수정)는 대화의 단절로 침묵이 찾아드는 외로움을 못견뎌 끊임없이 독설을 내뱉고, 아내가 왜 달라졌는 지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이선균)은 아내의 잔소리가 지겨워 헤어질 궁리를 한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죽여달라고 부탁한 '마누라 죽이기' 처럼 아내를 떼어내기 위해 희대의 카사노바(류승룡)에게 아내를 유혹해 달라고 부탁한다. 설정부터 코믹한 영화는 맛깔스런 대사와 유머러스한 상황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결코 억지 웃음이 아닌 허를 찌르는 유머로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카사노바를 연기한 류승룡의 시침 뚝 뗀 진지한 연기는 압권이다. 새삼 코믹 ..

내 아내의 모든 것

민규동 감독의 '내 아내의 모든 것'은 박제화된 낭만을 볼 수 있는 영화다. 세레나데를 부르고, 느끼한 말을 하며 상대의 관심을 끄는 작업들이 낭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장난처럼 웃음을 유발한다. 세상이 그렇게 변했기 때문이다. 사랑도 인스턴트 라면 식으로 가벼워져 그런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영화는 부감샷으로 잡은 사람들이 사는 도시 풍경을 토이렌즈로 잡아, 마치 장난감 세상처럼 보여준다. 그 속에서 펼쳐지는 인간 군상들의 진지한 모습이 오히려 웃음을 주는게 이 작품의 매력이다. 최진실 박중훈이 주연하고 강우석 감독이 만든 '마누라죽이기'처럼 이 영화도 아내에게서 달아나고 싶은 남자를 다뤘다. 잔소리만 늘어 놓는 지겨운 아내와 이혼할 방법을 찾는 남편, 이 세상 모든 여자를 사로잡는 마력의 카사..

영화 2012.06.10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민규동 감독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년)을 보면 요즘 한국영화를 참 잘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쌍의 각기 다른 사랑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구성이 '러브 액츄얼리'와 흡사해 감점 요인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우리 현실에 맞는 사랑, 즉 사람들의 애환이 적절히 녹아든 생활 이야기로 '러브 액츄얼리'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특히 형식상 많은 인물과 여러 이야기가 섞이다 보면 혼선을 빚을 법도 한데 연결고리에 신경을 써서 적절한 편집으로 이야기를 잘 정리했다. 영화를 보면 민 감독은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시선이 따뜻한 인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전작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서도 그랬지만 이 작품 역시 소외받고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의 작은 행복을 놓치지 않는다. 현재의 삶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