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박인환 4

조용한 가족(블루레이)

영화 '조용한 가족'(1998년)은 잔혹코믹극을 표방한 김지운 감독의 데뷔작으로, 그의 작가적 역량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다. 잔혹코믹극이란 무섭고 끔찍한 내용이지만 뜻하지 않은 상황이 가져오는 부분 때문에 역설적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영화를 말한다. 예를 들어 절벽에서 떨어질 뻔한 순간에 아슬아슬하게 나뭇가지를 움켜잡아 한 숨 돌렸는데 우지직 하면서 나뭇가지가 부러지거나, 킬러가 지각을 하는 바람에 엉뚱한 사건이 벌어지는 식이다. 그만큼 김 감독은 상충되는 웃음과 공포의 순간을 병치하는 영리한 구성으로 반전을 꾀하며 기발한 재미를 줬다. 어찌보면 이는 곧 예상하지 못했던 트릭이기도 하지만 기분좋게 웃을 수 있는 장난같은 속임수다. 이런 트릭이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잘 꿰어맞춘 이야기의 연결성 덕분이다. ..

봄날은 간다 (블루레이)

허진호 감독의 두 번째 작품 '봄날은 간다'(2001년)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대사가 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앞뒤 맥락없이 이 말 한마디만 놓고 보면 다소 낯간지러울 수 있지만 영화 속에서는 사실상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대사다. 꼭 영화가 아니더라도 살면서 사랑에 설레이거나 가슴 아파한 사람들에게는 꽤나 큰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는 말이다. 영화는 한때 화사한 봄날처럼 아름답고 눈부셨던 사랑도 세월과 함께 속절없이 바래져가는 현실을 담담하게 담았다. 그 속에서 사랑에 아파하는 남자의 마음이 때로는 무겁게 때로는 아리게 다가온다. 아무래도 허 감독이 남자이다보니 남자 쪽 시선에서 사랑의 아픔을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유지태와 얄미운 여자 역을 제대로 해낸 ..

박쥐 (블루레이)

박찬욱 감독은 워낙 이색적인 소재를 좋아한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평이한 이야기보다는 좀 더 자극적이고 현실에서 볼 수 없는 판타지를 추구한다. '박쥐'(2010년)는 그런 그의 특성이 잘 묻어난 작품이다. 흡혈귀가 돼버린 성직자가 밤마다 피를 찾아 헤메는 것도 아이러니하지만 그 속에서 신의 용서를 갈구한다는 것도 특이하다. 하지만 감독의 특성에 부합한다고 해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흡혈귀라는 이질적인 소재 만큼이나 거리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나마 복수 3부작은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은 정말 박 감독이 머리 속에서 그려낸 판타지 세계에 빠져들지 않으면 공감하기 힘든 작품이다. 피를 갈구하는 성직자, 성적 욕망에 몸부림치는 유부녀, 한옥에서 즐기는 마작 등 이 ..

박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그런 작품이다. 박 감독이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공동경비구역 JSA' 등 전작들에서 보여준 연출력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칸 영화제 진출 소식과 박 감독이 스스로 자신의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작품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사람마다 갈리겠지만 전작들에서 보여준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짜임새 있는 화면 구성 등을 이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쓰리'도 그랬지만, 약간 비현실적인 판타지풍이 박 감독과 잘 안맞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는 철저한 이중성을 이야기한다. 성직자이면서 악마의 상징인 흡혈귀로 살아가는 남자와 성적 욕망에 몸부림치..

영화 2009.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