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배두나 4

플란다스의 개 (블루레이)

2003년 10월, 영화 '살인의 추억' 개봉 후 DVD 작업을 한창 할 때 봉준호 감독을 인터뷰했다. 지금은 사라진 DVD 잡지들에 한창 타이틀 리뷰를 쓰던 때여서 궁금한 게 많았던지라, 봉 감독에게 '살인의 추억' DVD 이야기를 주로 질문했다. 봉 감독이 워낙 얘기를 잘해서 예정된 1시간을 훌쩍 넘겨 대화를 나눈 뒤, 일어서기 전에 싸인을 부탁하며 '플란다스의 개'(2000년) DVD 타이틀을 내밀었다. 봉 감독이 자신의 첫 작품이라 애정이 많이 간다며 은근히 좋아하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나온 블루레이 타이틀을 보니 그때 기억이 새록 새록 떠오른다. 봉 감독의 데뷔작인 이 작품은 본명이 매리 루이스 드라 라메인 영국의 동화작가 위다가 쓴 동화 '플란다스의 개'와 아무 상관이 없다. 동화를 토대로 ..

코리아

실제 있었던 스포츠 시합을 영화화 하는 것은 사실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일이다. 이기던 지던 승부를 향한 극적인 드라마가 절반은 완성돼 있기 때문. 나머지 절반은 과정의 간극을 메우는 에피소드들이다. 그런 점에서 문현성 감독의 '코리아'는 이미 절반의 점수를 따고 시작했다. 1991년 제 41회 세계탁구선수권 대회에서 사상 최초로 남북한이 한 팀을 이뤄 결승까지 올라가 극적인 금메달을 땄으니, 그야말로 가슴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굳이 각종 수식어와 미사여구를 동원하지 않아도 그 사실 만으로도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영화는 여기에 초점을 맞췄다. 남한의 탁구영웅 현정화와 북한이 낳은 세계적인 탁구선수 이분희가 세계 1위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거는 과정에 남북한 선수들이 하나가 되는 우여곡절을 양념..

영화 2012.05.13

괴물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년)은 다면성을 지닌 작품이다. 한강에 괴물이 산다는 설정만 놓고 보면 공상과학(SF)물이며 재난 영화다. 그렇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가족영화면서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의미심장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끌어가는 것은 괴물이 아니라 괴물에게 어린 소녀를 납치당한 가족들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가족에 대한 철썩같은 믿음과 사랑 뿐인 평범한 소시민인 이들은 군대도, 경찰도, 심지어 세계 경찰 노릇을 하는 미국도 못해내는 일에 몸을 던진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국가도 해내지 못한 일을 가장 힘없는 소시민이 해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정치적 메타포다. 어찌보면 정치 권력과 제도에 대한 항거처럼 보인다. 특히 주한 미군의 독극물 한강 방류, 고엽제를 연상케하는 에이전트 옐로..

복수는 나의 것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2002년)은 하드 보일드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영화다. 하드 보일드라는 말은 작가 더쉴 해미트의 추리 소설 이후 오랜만이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본 사람들은 이 작품을 보고 많이 놀랐겠지만, 류승완 감독 말마따나 박찬욱의 본령이 바로 이 작품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올드보이'를 봐도 그렇고, 그는 잔혹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재주가 있다. 장기 밀매단에게 사기를 당한 청년(신하균)과 그에게 아이를 유괴당한 아버지(송강호), 아이 아버지에게 고문을 당하고 죽은 여자(배두나) 패거리의 3가지 복수가 맞물린 이 작품은 공포영화처럼 참혹하고 잔인하다. 복수에 불타는 사람들이 피구덩이 속에서 차례로 죽어가는 모습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을 연상케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