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성현아 3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블루레이)

2004년 홍상수 감독의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언론 시사회 때 참석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영화가 언제나 그렇듯 느닷없이 끝나는 결말에, 뒷줄에서 황당하다는 듯 웃음이 터졌다. 황당함은 기자간담회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계속 됐다. 여자가 남자의 미래인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홍 감독 왈, "제목은 내용과 상관없다. 어느 날 이 문장을 봤는데 끌려서 붙였다. 제목은 문장일 뿐"이라고 답했다. 그래서 이것은 좀 아니다, 무책임하다는 생각에 혹독하게 기사로 깠다. 한편으로는, 이전에 본 서너 편의 작품과 동어반복처럼 되풀이 되는 그만의 스타일이 좀 게을러 보이는 측면도 있었다. 그때는 그런 점들이 홍 감독 영화의 단점으로 보였는데, 시간이 지나서 여러 편 보다보니 그의 개성으로 부각된다. 등장..

시간

'섬' '악어' '나쁜 남자' '파란 대문' 등 김기덕 감독의 작품들은 대체로 낯설고 불편하다. '시간'(2006년)도 마찬가지다. 애인의 사랑을 잡아두기 위해 끊임없이 성형 수술을 하는 여인때문에 빚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진정한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 지 진지하게 묻고 있다.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외형을 바꿔 새로움을 추구하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성형중독에 빠진 세태를 비꼬고 있다. 결국 새로움을 추구하다가 서로의 정체성과 과거의 추억까지 모두 잃어버린채 서로 낯선 존재로 남게된 연인의 모습은 섬뜩하다. 과거 작품들에서 외부로 표출됐던 인물들의 분노가 이 작품에서는 자학하듯 얼굴을 뜯어고치는 식의 인물 내부로 향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작품의 언론시사회 직후 "앞으로 한국에서 영화를 개봉하지 않..

주홍글씨

욕망은 초콜릿 같다. 핥을수록 달지만 달콤함 뒤에 식욕을 떨어뜨리고 나른한 나락으로 끌어들이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변혁 감독은 '주홍글씨'(2004년)에서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나른한 욕망을 그렸다. 이브가 유혹의 사과를 아담에게 건네는 대목인 성경의 창세기 3장 6절로 시작한 영화는 식욕이나 물욕, 명예욕도 아닌 색욕을 이야기한다. 등장인물도, 이야기의 발단이 되는 사건도 모두 헤어날 수 없는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유혹의 초콜릿을 핥은 인물은 강력계 형사 기훈(한석규). 그는 아내 수현(엄지원)과 애인 가희(이은주)를 오가며 욕망의 달콤함을 한껏 즐긴다. 그런 그에게 과제처럼 주어진 살인 사건은 욕망이 파국으로 치닫는 굴레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런 점에서 살인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경희(성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