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손병호 5

파이란 (블루레이)

최민식의 연기력이 빛나는 영화 '파이란'(2001년)은 일본 작가 아사다 지로의 단편 소설 '러브레터'를 각색한 작품이다. 별 볼일 없는 아사다 지로의 원작을 너무나도 아름다운 영화로 바꿔놓은 것은 송해성 감독의 돋보이는 연출력이다. 송 감독은 멀리서 지켜보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카메라를 통해 인물들과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다. 이 같은 카메라의 움직임이 지나친 감정과잉으로 치닫지 않고 절제되며 깔끔한 영상을 연출해 극 중 인물들에게 오히려 빠져들게 만든다. 특히 조폭 사무실 창 너머로 거친 조폭들의 움직임을 잡은 영상이나 파이란이 인천 차이나타운에 처음 도착한 장면을 롱샷으로 잡은 장면 등은 보는 이를 집중하게 만드는 흡입력이 있다. 더불어 강원도 바닷가 장면 등 화면을 꽉 채우는 서정적인 영상이 돋..

퍼펙트 게임

지금은 고인이 된 롯데 자이언츠의 명투수 최동원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투 아웃 이후 2 스트라이크 3볼 풀 카운트 상황, 사람들은 마운드에 선 최동원만 바라 봤다. 크게 와인드업 한 뒤, 내리 꽂 듯 공을 던지자 마자 최동원은 포수 쪽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덤덤한 표정으로 터덜 터덜 마운드를 걸어 내려 갔다. 볼 것도 없이 스트라이크라는 오만함과 자신감의 표시였다. 아니나 다를까, 심판의 스트라이크 아웃을 외치는 요란한 몸짓이 곧바로 이어진다. 이를 TV로 지켜보며 그의 담대함과 자신감에 절로 경탄했던 기억이 난다. 비단 나만 그렇게 느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롯데 팬으로 보이는 박현욱의 장편 소설 '새는'에도 초반 최동원에 대한 같은 얘기가 나온다. 박희곤 감독의 '퍼펙트 게임'은 프로야구 ..

대한민국 1%

해병대 특수수색대를 다룬 '대한민국 1%'는 고 조명남 감독의 유작이다. 조 감독은 국내에서 최초로 북한 금강산 관광지에서 촬영한 영화 '간 큰 가족'을 만들었다. 그는 '간 큰 가족' 촬영 후 두 번째 영화로 '대도 송학수'를 준비하던 중 2006년 대장암 선고를 받았다. 그때부터 긴 투병 생활을 한 그는 이번 작품을 촬영하고 마지막 믹싱 작업을 남겨 놓은 채 2010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 이유로 주목을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영화는 기대에 못미쳤다. 해병대 사상 최초로 여자 하사관이 특수수색대에 들어가 팀장이 되는 내용이다. 하지만 힘들기로 유명한 해병대 특수수색대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했고, '지아이 제인'처럼 감탄할 만한 여전사도 등장하지 않는다. 해병대가 협조를 약속했다가..

바르게 살자

일본의 유명한 각본가인 사이토 히로시는 우리에게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은 재기발랄하다. 그가 각본을 쓴 '사무라이픽션' '환생'이 그랬고, 그의 원작을 우리나라에서 영화로 옮긴 '도둑맞곤 못살아'와 '복면 달호'도 그렇다. 최근작인 '바르게 살자'(2007년)도 마찬가지. 라희찬 감독의 데뷔작인 이 작품은 사이토 히로시의 원작을 장진 감독이 각색했다. 이 작품은 새로 부임한 경찰서장이 잇따라 터지는 은행강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모의 은행강도 훈련을 벌이면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다뤘다. 장진 영화 특유의 허를 찌르는 황당한 웃음과 진지함이 교묘하게 뒤섞이면서 사회의 부조리를 풍자한 작품이다. 장진의 '기막힌 사내들'처럼 감탄을 자아낼 정도는 아니지만 이야기를 끝까지 쫓아가게 만드는 재미..

야수 (감독판)

'야수'(2005년)의 감독판 DVD는 극장 개봉시 삭제된 20여분 가량이 추가됐다. 덕분에 이야기가 한결 윤택해지고 장면 전환이 매끄럽다. 극장판의 경우, 장면 전개가 지나치게 건너뛰는 부분이 많아서 비약이 심하다보니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감정과잉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감독판은 충분한 설명 덕분에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둘러싼 전후맥락이 분명하게 이해된다. 신인감독 김성수의 데뷔작인 이 작품은 권력에 길들여지지 않는 야수같은 두 남자의 처절한 인생사를 다루고 있다. 막강한 권력을 거머쥔 악당에 맞서는 형사와 검사의 처절한 싸움은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그다지 끌리는 작품은 아니다. 이야기의 흡입력도 떨어지고 메시지 부각을 위해 홍콩 느와르처럼 내용을 과장하다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