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수애 5

불꽃처럼 나비처럼

김용균 감독의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비운의 왕비 명성황후의 최후를 둘러싼 가상의 역사드라마다. 명성황후를 마음에 둔 무사가 최후까지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내용이다. 원작이 야설록의 무협소설이다보니 영화는 무협 드라마에 가깝다. 만화가 이현세와 스토리 작가로 단짝을 이뤘던 야설록은 '남벌'로 대표되는 민족적 색채가 강한 작가다. 경우에 따라서는 마초 성향이 두드러진 지나친 국수주의로 보이기도 한다. 이 작품은 명성황후 시해라는 일본의 극악무도한 행위 때문에 주인공이 람보처럼 설쳐도 지나친 국수주의나 마초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원맨 히어로에 의존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은 결코 무협지의 범주를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특히 명성황후와 무사의 미묘하게 전개되는 감정선을 좀 더 꼼꼼하게..

님은 먼 곳에 (DVD)

국민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는 격동의 시대였다. 월남전부터 문세광 사건, 박정희 대통령 서거까지 일련의 사태들이 10년의 역사 속에 소용돌이 치듯 지나갔다. 특히 월남전은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 이상문의 '황색인' 등 월남전 소재 소설들을 통해 너무나도 익숙하다. 그만큼 월남전은 70년대를 보낸 사람들에게는 떼어낼 수 없는 정서의 한 부분이다. 여기에 익숙한 노래까지 한 자락 곁들인다면 옛날 앨범을 다시 들추는 것처럼 지나간 시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으로 가슴 한 켠이 저려온다.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 곳에'(2007년)가 바로 그런 영화다. 벌써 제목에서부터 신중현이 만들고 김추자가 부른 같은 제목 노래의 서러운 가락이 들려오는 것 같다. 가부장적 질서가 나라 전체를..

님은 먼 곳에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 곳에'는 대중적인 오락 영화를 좋아한다면 쉽게 볼 만한 작품은 아니다. 줄거리를 강조하는 하이틴 소설같은 TV드라마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과 달리 흘러간 정서를 담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요즘 정서가 아닌 지나간 세월과 1960, 70년대 문화가 녹진 녹진하게 묻어 있는 옛 것이라는 점이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도대체 그런 가수가 있었던가 싶은 '쇼쇼쇼' 시절의 김추자의 히트곡 '님은 먼 곳에'를 제목으로 붙인 것부터 시작해서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팔려가다시피 참전한 월남전, 여기에 70년대 트로이카였던 정윤희를 닮은 수애까지 영화 속 모든 게 옛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는 월남전에 참전한 남편을 찾아 떠나는 아내(수애)의 이야기다. 사랑하지도 않고 애틋한 정도 없는 여..

영화 2008.08.01

나의 결혼원정기

황병국 감독의 데뷔작 '나의 결혼원정기'(2005년)를 처음 본 곳은 3월에 출장차 탔던 유럽행 비행기였다. 몇 가지 영화를 보기 위해 좌석에 연결된 AV시스템의 채널을 돌리던 중 이 작품을 하길래 우연히 보게 됐다. 아무 생각없이 봤지만 작품은 기대 이상이었다. 마흔이 가깝도록 결혼을 못한 시골 노총각들이 할 수 없이 머나먼 우즈베키스탄까지 가서 신부를 찾는 얘기를 코믹하면서도 가슴 찡하게 그렸다. 농촌 총각들이 여자들의 결혼 기피상대가 돼버려 우즈벡, 필리핀, 베트남 등으로 결혼원정을 떠나는 우리네 안타까운 현실을 제대로 짚은 메시지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뛰어난 것은 작품의 리얼리티, 즉 현실감이다. 경상도 사투리를 천연덕스럽게 구사하는 배우들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고, 실화를 토대로 감행한 ..

가족

이정철 감독의 데뷰작 '가족'(2004년)이 지난해 히트작 중 하나라는 게 이해가 안 간다. 추석 때 개봉한 이 작품은 2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들며 흥행에 성공했고, 수애에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까지 안겨줬다. 주된 내용은 부녀 간의 갈등 때문에 삐뚤어지게 자란 딸이 감옥을 다녀온 뒤 아버지(주현)의 사랑을 점차 깨닫는다는 것. 도식적이고 뻔한 줄거리에 이렇다 할 에피소드도 없고 더할 수 없이 심심한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추석이라는 시점과 대박 경쟁작이 없었던 것이 흥행의 요인이 아닌가 싶다. 극장에서 볼 만한 영화라기보다 TV 단막극으로 소화할 만한 작품이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평범한 그저 그렇다. 내용이 그렇듯 영상에도 이렇다 할 임팩트 요소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