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아사노 타다노부 4

피크닉

이와이 슌지 감독의 '피크닉'(1996년)은 '러브레터' '4월이야기' '하나와 엘리스' 등 순정만화처럼 곱디 고운 그의 작품들과 같은 분위기를 기대하고 본다면 깜짝 놀랄 수 밖에 없다. 이 작품은 어둠과 죽음, 상실의 비극이 혼재된 다크판타지다.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작품을 만든 이와이 슌지 감독에게는 양면성이 있다. 가슴 떨리는 사랑의 기억이 있다면 세상으로부터 달아나고픈 소외의 충동이 있다. 그래서 이와이 슌지 감독의 팬들은 전자를 '화이트 이와이'라고 부른다. '러브 레터' '4월이야기' 등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후자는 '검은 이와이'라고 부른다. '언두' '피크닉'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등이 여기 해당하며, 이 작품들이 2005년 한꺼번에 국내 개봉했다. 그 중 '피크..

카페 뤼미에르

일본의 유명 영화감독인 오즈 야스지로를 모른다면, 그래서 그의 작품이 궁금하다면, 그렇지만 그의 작품을 쉽게 볼 수 없다면 대만의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만든 '카페 뤼미에르'(Cafe Lumiere, 2003년)가 대안일 수 있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허우 샤오시엔이 만든 이 작품은 오즈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다미 쇼트와 메시지를 쟁여담은 소소한 일상 등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여기에 허우 샤오시엔의 특징인 긴 롱테이크가 양념처럼 얹혔다. 대만 음악가를 취재하는 어느 여성작가의 생활을 통해 오즈와 허우 샤오시엔이 만난 셈이다. 그렇게 영화는 오즈의 작품이 집착하는 소시민의 일상을 허우의 카메라를 통해 집요하게 드러낸다. 덕분에 영화는 사건의 발단도, 클라이맥스도, 결말도 ..

자토이치 (기타노 다케시 컬렉션 중에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자토이치'(2003년)는 참으로 독특한 영화다. 전통적인 검객이 등장하는 무협 영화에 슬랩스틱 코미디와 신명나는 탭댄스가 곁들여졌다. 거기에 맹인 검객 자토이치는 짧게 깎은 머리를 금색으로 물들였다. 장르에 설정까지 모두 뒤섞인 이 영화를 굳이 표현하자면 퓨전 영화로 부를 수 있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맹인 검객이 마을의 악당들을 일소하는 내용의 이 영화는 전혀 어색하지 않고 아주 재미있는 시대극으로 다시 태어났다. 워낙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작품들이 독특해서 이런 스타일 또한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덕분에 이 작품은 베니스영화제 감독상과 토론토 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했다. 실제로 전광석화같은 칼싸움에 양념처럼 끼어든 코미디, 막판 탭댄스가 서로 조화를 이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가..

고하토

'감각의 제국'을 만든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1999년 '고하토'(御法度)를 만들때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3년간 투병했지만 회복이 되지 않았기 때문. 그래서 그런지 위로 쳐다보거나 앉은 키에 맞춘 앵글이 많다. 이 작품은 19세기말 사무라이 집단인 신선조에서 일어난 동성애 사건을 그렸다. 칼과 충절만 아는 사무라이에게도 사랑이 존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오시마 감독은 동성애로 대답했다. 교도소나 병영처럼 남자들만 모여 있는 곳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다. 오시마 감독은 이성애자들이 보기에 다소 혐오스러울 수 있는 소재를 미묘하게 표현했다. 주로 행동보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심리 묘사에 치중했다. 어찌보면 더 소름끼칠 수 있지만 그것이 곧 오시마 감독의 사랑을 드러내는 방법이다. 16 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