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알프레드 히치콕 5

새(4K 블루레이)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익숙한 존재에 이만큼 강한 공포감을 불어넣은 영화도 드물다.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의 영화 '새'(The Birds, 1963년)는 어느날 느닷없이 인간을 공격하는 새떼를 다룬 이야기다. 다프네 드 모리에의 단편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원작처럼 왜 새들이 사람을 공격하는 지 끝까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무섭다. 그저 새들은 거대한 무리를 지어 맹목적으로 인간을 공격하고 온 도시를 뒤덮는다. 새떼가 사람을 습격해 눈을 파먹고, 나무 문을 뚫는 장면은 공포 그 자체다. 이를 위해 히치콕 감독은 다양한 기술을 동원해 공포를 시각화했다. 컴퓨터그래픽이 없던 시절, 히치콕은 순전히 아날로그 기술로 공포를 창조했다. 소듐조명을 이용한 매트프린팅 기법..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블루레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똑같은 영화를 두 번 만든 적이 있다. 그 작품이 바로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The Man Who Knew Too Much, 1956년)이다. 1934년 영국에서 흑백영화로 처음 만들어 성공한 작품이다. 원래 히치콕은 자신의 작품을 리메이크 하는 것을 싫어해 다시 만들 생각이 없었으나 파라마운트와 1편의 영화를 더 제작해야 하는 계약이 남아 있어서 고심 끝에 이 작품을 컬러로 다시 만들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동일하지만 캐릭터가 약간 바뀌었고 여기 맞춰 내용도 소폭 달라졌다. 이야기는 우연히 모로코로 휴가를 떠난 의사 부부가 뜻하지 않은 국제암살단의 음모에 휘말리는 내용. 30년대 영화에서 강렬했던 악당은 약간 움츠러들었고, 바람기 많은 주인공의 아내는 얌전하면서도 강인한 여..

토파즈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마니'(http://wolfpack.tistory.com/entry/마니)와 '찢겨진 커튼'(http://wolfpack.tistory.com/entry/찢겨진-커튼)이 잇따라 실패하자 초조했다. 그동안 수십 편의 영화를 만들어 돈도 많이 벌고 명성도 쌓았지만 여전히 인기와 명예에 목이 말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007 시리즈 같은 스파이 스릴러를 기획했다. 바로 '토파즈'(Topaz, 1969년)다. 레온 유리스가 쓴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1962년 10월 실제로 일어났던 쿠바 미사일 사태를 둘러싼 첩보전을 그리고 있다. 소재만 실제 사건이 아니라 내용도 상당 부분 실화다. 작가 레온 유리스는 실제 프랑스 정보원이었던 필립 드 보졸리를 바탕으로 원작 소설을 써..

의혹의 그림자

"악당은 완전히 검은색이 아니고, 영웅도 완전한 흰색이 아니다. 세상은 모두 회색이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이런 생각을 갖고 미스테리 스릴러 영화 '의혹의 그림자'(Shadow Of A Doubt, 1943년)를 만들었다. 실제로 영화 속 인물들은 이러한 이중성을 갖고 모호하게 처리됐다. 평화로운 작은 마을의 어느 가족에게 어느날 낯선 삼촌(조셉 코튼)이 찾아온다. 삼촌은 더 할 수 없이 친절하고 점잖은 신사지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았는 지 아무도 모른다. 형사들이 삼촌의 뒤를 캐면서 여주인공 찰리(테레사 라이트)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빠진다. 결국 의문에 쌓인 삼촌의 정체와 마을의 이중성이 영화를 끌어가는 힘이다. 마을의 이중성은 "세상이 불결한 돼지우리라는 것을 아니? 세상은 지옥이야. 그..

파괴공작원

유니버셜에서 내놓은 '히치콕 콜렉션'에 수록된 첫 번째 작품은 '파괴공작원'(Saboteur, 1942년)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유니버셜과 계약을 맺고 처음 만든 작품이기 때문. 뿐만 아니라 영국 출신인 그가 미국에서 미국을 배경으로 미국을 다룬 최초의 영화이기도 하다. 히치콕은 신고식을 화끈하게 준비했다. 억울하게 테러리스트 누명을 쓴 주인공이 파괴 행동을 일삼는 나치로 의심되는 악당들을 물리치는 내용으로,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무대도 후버댐, 자유의 여신상 등 미국을 상징하는 건축물들이다. 마침 영화 개봉 전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면서 분위기도 잘 맞아 떨어졌다. 주인공이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범인을 찾는 과정이 쫓고 쫓기는 추격전으로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