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엄정화 9

끝과 시작

민규동 감독의 '끝과 시작'(2013년)은 옴니버스 영화 '오감도'에 수록된 같은 제목의 네 번째 에피소드를 확대한 작품이다. 내용은 큰 줄거리는 같지만 일부 소소한 부분이 달라졌다. 단편은 재인(황정민)과 나루(김효진)가 자동차에서 정사를 벌이다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장편은 재인의 아내인 정하(엄정화)가 자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재인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또 재인과 나루의 이야기가 실은 동창회에서 만난 재인이 정하에게 구상 중인 작품을 들려주는 내용이다. 즉 액자 소설처럼 피카레스크식 구조를 갖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민 감독은 이를 상상이 현실로 되풀이되는 식으로 구성했다. 특히 과거 재인이 정하에게 들려준 상상 속 이야기가 미래에 재인과 정하가 결혼한 뒤 현실화된..

싱글즈 (블루레이)

9자가 들어가는 나이는 왠지 불안하다. 인생의 10년 단위가 저무는 것이지만 1999년처럼 왠지 한 시대가 끝나는 느낌이 든다. 특히 29세라는 나이는 그런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킨다. 더러 20대와 30대의 언저리에서 마치 파릇파릇한 청춘의 20대를 흘려 보내고 아저씨 아줌마가 되는 30대로 접어드는 공포감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오죽했으면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가 다 나왔을까. 일본의 유명 드라마 작가 카마타 토시오는 바로 이 불안한 '29세'를 놓치지 않았다. 29세의 패션업체 여직원은 생일에 남자에게 채이고, 원형 탈모증이 생겼으며, 꿈꿨던 파리컬렉션에도 후배에게 밀려 가지 못한다. 카마타 토시오는 잔뜩 꿈에 부풀지만 제대로 이뤄지는게 없는 불안한 29세의 격정을 드라마 대본으로 만들어 인기를 끌..

결혼은 미친 짓이다 (블루레이)

유하 감독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1년)는 계몽적이거나 위선적이지 않아서 좋다. 올바른 사랑이나 인생의 참된 가치관에 대해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저 당시 세태를 솔직하게 보여줄 뿐이다. 이만교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결혼 따로, 연애 따로인 현대 남녀의 솔직한 사랑을 다뤘다. 제목은 역설적으로 결혼이 여러가지 조건을 따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더불어 진실된 사랑보다는 조건이나 형식에 얽매인 결혼제도의 맹점을 꼬집는다. 유하 감독의 이런 비판적 현실관은 나중에 '말죽거리잔혹사'를 통해 학교라는 틀 안에서 벌어지는 위선적 폭력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결혼 제도에 대해 지극히 냉소적인 판타지다. 여주인공이 두 집 살림을 하는 이유도 조건에..

댄싱 퀸

이석훈 감독의 '댄싱 퀸'(2012년)은 CJ 계열사들이 공동으로 추진한 비즈니스 프로젝트 같은 영화다. CJ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을 맡아 엠넷의 슈퍼스타K를 최대한 활용해 촬영한 뒤 CGV에서 집중 상영했다. 어찌보면 CJ그룹의 엔터테인먼트 파워를 보여주기 위해 만든 CF 같다. 그렇게 조합한 설정이 관객을 자연스럽게 영화에 빠지도록 하는 것을 보면, 성공한 프로젝트인 셈이다. 관객을 끌어들이는 비결은 그럴 듯하면서도 이색적인 설정 때문이다. 인권 변호사가 시장 후보로 나서고 그의 아내인 주부가 오디션 프로에 도전해 가수가 되는 설정 등은 기성 정치권에 염증을 느끼고 대박을 꿈꾸는 오디션에 열광하는 요즘 세태를 반영했다. 여기 담긴 나이 상관없이 언제라도 자신의 꿈을 위해 도전하라는 메시지는 진부하지만 ..

영화 2012.01.22

베스트셀러

이정호 감독의 '베스트셀러'는 미스터리보다 괴기물에 가깝다. 얼개는 추리 소설의 형태를 따라가지만 내용은 '전설의 고향' 같은 괴담이다. 그만큼 이야기의 전개에 관심을 끌게 하는 요소가 있지만, 너무 늘어지는 것이 단점이다. 등장인물의 심리묘사와 분위기로 긴장감을 몰아가려는 의도였겠지만 유장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관객의 진을 빼놓는다. 그렇다보니 후반부에 급격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전반부와 반대로 비약이 심하다. 관객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이야기의 해결을 위해 너무 무리하고 급격하게 진행시켰다는 느낌이다. 결국 논리적 전개에 구멍이 뚫리다보니 미스터리의 지적 유희를 놓치고 괴담으로만 치닫고 말았다. 그렇다고 괴담이 아주 몸서리쳐질 만큼 무서운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미스터리도 아니요 괴담도 아닌 어정쩡한 작..

영화 2010.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