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왕가위 15

에로스(블루레이)

2004년 나온 '에로스'(Eros)는 왕가위(Kar Wai Wong), 스티븐 소더버그(Steven Soderbergh),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Michelangelo Antonioni) 감독 3명이 만든 옴니버스 영화다.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한 감독 3명의 서로 다른 시선과 연출 기법을 비교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획이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이 1995년 '구름 저편에' 연출 도중 중풍에 걸려 어려움을 겪으면서 죽기 전에 사랑에 대한 3부작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현실화한 시리즈다. 여기에 안토니오니 감독의 영향을 받은 후배 감독들이 뜻을 함께 했다. 원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참여할 계획이었으나 일정이 맞지 않아 대신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참여했다. 결국 이 작품은 2007년 사망한 안..

2046(블루레이)

왕가위나 김기덕 감독은 다른 감독의 작품들보다 그들의 전작들과 종종 비교되는 감독들이다. 그만큼 다른 감독들과 비교하기 힘든 독특한 색깔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왕가위의 최근작 '2046'(2004년)도 마찬가지다. 엇갈린 사랑의 운명을 얘기하는 이 작품은 흔히 '화양연화'의 후속편으로 알려졌다. 정작 왕감독은 "화양연화의 에피소드를 포함하고 있을 뿐 후속편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지만 화면 곳곳에 '화양연화' 분위기가 강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장고 끝에 악수둔다고, 5년 동안 홍콩, 중국, 태국, 마카오 등을 돌며 만든 이 작품은 산만한 구성 탓에 '화양연화'만큼 안타까운 사랑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지는 못했다. 국내의 경우 2004년 10월에 2주동안 개봉했으나 관객 동원 14만6,000명에 그쳤다. 그..

동사서독 리덕스(블루레이)

'동사서독'은 왕가위 감독의 처음으로 만든 무협영화다. 원래 김용의 소설 '사조영웅전'을 바탕으로 그 앞 얘기를 다룬 프리퀄 같은 작품이다. 따라서 사조영웅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무림고수가 되기까지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지를 왕가위가 나름의 해석을 곁들여 풀어낸 영화다. 김용의 무협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흥미를 갖고 볼만한 작품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인물들 간에 얽히고설킨 이야기와 과정이 어리둥절할 수 있다. 내용은 동사 황약사(양가휘)와 서독 구양봉(장국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사막 한가운데 객점을 차려놓고 살인청부를 중개하는 구양봉과 바람둥이 무림고수인 황약사, 황약사를 사랑했다가 농락당한 뒤 죽이려 드는 모용연(임청하), 구양봉을 사랑하지만 그의 형과 결혼하게 된 비운의 여인 자애인(..

타락천사 (블루레이)

킬러는 오랫동안 함께 일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더 이상 사랑을 이어갈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여인과 마지막 약속을 한다. 여인은 망부석처럼 앉아서 기다리지만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애잔한 노래가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당신을 잊었어. 모든 것을 잊어버렸어. 살아갈 의미 조차 잊어 버린 채 나 자신도 잃어 버렸어...' 왕가위 감독의 스타일리시한 영화 '타락천사'(1995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관숙이, 셜리 콴이 부르는 노래 '망기타'(忘記他)이다. '그를 잊었다'는 뜻의 제목이 말해주듯 이 노래는 가슴 시린 이별가이다. 영화 속에선 두 번 등장한다. 한 번은 킬러인 여명이 파트너인 이가흔과 이별할 때, 또 한 번은 여명이 이가흔을 잊기 위해 거리에서 만난 막문위와..

중경삼림 (블루레이)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1994년)은 참으로 독특한 영화다. 두 편의 에피소드로 나뉜 이야기는 연결되지 않는 듯하면서도 스쳐지나가는 인물들과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라는 노점 카페를 통해 교묘하게 연결되는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서로 남남이지만 사회라는 틀 안에서 보이지 않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인간 사회의 축소판 같다. 전작인 '아비정전'의 흥행 실패 이후 데뷔작인 '열혈남아' 스타일로 회귀한 이 작품은 '열혈남아'에서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그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홍콩 반환을 목전에 둔 불안한 홍콩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하듯 청춘 군상들의 흔들리는 사랑을 '열혈남아'에서 보여준 스텝 프린팅과 핸드헬드, 형광등 조명, 뮤직비디오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딱 떨어지는 음악과 영상의 조합으로 풀어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