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윤종빈 5

공작 (블루레이)

기사로 언론에 많이 소개된 박채서는 참으로 독특한 인물이다. 3 사관학교를 나와 각종 훈련과 교육을 받고 소령 계급으로 국군정보사령부 공작단 본부에서 근무하던 그는 국가안전기획부의 지시로 이중 스파이 노릇을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남북한을 오가며 이중 스파이 활동을 한 것처럼 가장한 안기부의 공작원이었다. 당시 안기부가 그에게 부여한 암호명이 흑금성이었다. 사업가를 가장해 중국과 북한을 드나들던 박채서는 북에서 꽤나 신임을 얻어 김정일까지 만났다. 덕분에 그는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이 주도한 북풍을 막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에 일조했다. 북풍이란 지금의 자유한국당이 뿌리를 둔 신한국당에서 선거에 이기기 위해 북한에 무력 도발을 부탁하고 몰래 지원한 것으로, 북에서 일어난 바람이라는 뜻의 북풍 ..

군도

1960년대 국내에 만주 웨스턴이라는 장르가 유행했다. 당시 인기있던 서부극의 배경을 1930년대 무법천지 일제하의 만주로 바꿔서 우리 식으로 재해석한 서부극이다. 윤종빈 감독의 '군도'는 서부극에 가까운 서사적 구조를 갖고 있다. 서부극 중에서도 스파게티 웨스턴에 가깝다. 정통 미국식 서부극이 보안관에 의한 법 집행, 즉 공권력의 정당성 만을 정의로 본 반면에 이탈리아 감독들이 만든 스파게티 웨스턴은 서부극의 공간을 무주공산의 권력 공백으로 봤다. 즉, 공권력도 악당이 될 수 있고 악당도 정의가 될 수 있는 아노미 상태에서 쓰러져가는 약자들에 초점을 맞췄다. 즉, 약자를 괴롭히면 공권력도 악당이고, 그들을 위해 총을 뽑으면 악당도 영웅이 된다는 시각이 바로 스파게티 웨스턴과 미국식 정통 서부극의 차이다..

영화 2014.07.27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블루레이)

윤종빈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한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년)는 어둠의 권력에 빌붙어 사는 사나이의 비루한 삶을 다뤘다.부패한 세관공무원에서 뒷골목 조폭들과 손잡고 반달(반건달)로 변신한 익현(최민식)은 뇌물로 맺은 인맥으로 승승장구한다.주먹과 뇌물이 오가는 더러운 먹이 사슬 속에서 큰 권력은 작은 권력을 잡아먹거나 비호하며 썩은 내를 풍긴다.그렇기에 스러지는 희생자들은 하나같이 나쁜 놈들이어서 결코 동정받지 못한다.유일하게 선한 희생자가 있다면 그들의 가족이다.한밤 중 들이닥친 경찰의 손에 끌려가는 수갑 찬 애비를 봐야 하고, 피비린내 풍기는 건달들 틈바구니에서 호로새끼가 될 지 모를 위협 속에 하루하루 살아간다.이를 윤 감독은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치 않고 건..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2005년 윤종빈 감독이 '용서받지 못한 자'를 들고 나왔을 때, 훗날 꽤 문제작을 만들 만한 감독으로 보였다. 쉽게 다루기 힘든 군대 내 부조리를 다큐멘터리처럼 묘사한 솜씨가 일품이었기 때문. 그로부터 7년,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로 돌아온 그의 시선은 한층 예리하고 깊어졌다. 윤 감독이 각본까지 쓴 이 작품은 피라미드처럼 올라가는 권력에 기생하는 한 사나이의 비루한 삶을 다뤘다. 부패한 세관공무원이었다가 해고된 익현(최민식)은 살아남기 위해 뒷골목 권력인 조폭두목 형배(하정우)와 손을 잡고, 더 잘 살기 위해 검사 정치인 등 권력의 상층부에 줄을 댄다. 더럽게 얽힌 먹이사슬 속에서 큰 권력은 작은 권력을 잡아먹거나 비호하며 썩은 내를 풍긴다. 그렇기에 스러지는 희생자들은 결코 동정받..

영화 2012.02.04

용서받지 못한 자

윤종빈 감독의 대학 졸업작품인 '용서받지 못한 자'(2005년)는 군대 이야기를 다룬 장편 영화다. 그렇지만 군인들이 총들고 뛰어다니는 '배달의 기수' 식의 군대 영화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 작품은 국방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강제 징집된 젊은이들이 군대라는 조직적 폭력 앞에서 희생자이자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이중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감독은 결코 그것이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한 젊은이가 서서히 조직적 폭력에 길들여 지고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군대 폭력은 국가와 사회가 빚어낸 제도적인 폭력임을 강조한다. 학교를 갓 졸업한 신인 감독치고는 문제의식이 범상치 않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밀도있는 구성과 영상으로 풀어낸 솜씨도 예사롭지 않다. 그것도 모자라 윤 감독은 영화의 중요한 배역인 신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