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이성민 5

목격자(블루레이)

신문방송학과 혹은 언론학부 교재에 오랫동안 언론보도의 영향력으로 소개된 유명한 사례가 있다. 바로 '방관자 효과'로 알려진 '제노비스 신드롬'(Genovese syndrome)이다. 1964년 3월,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면에 살인사건 기사를 보도했다. 한밤중에 집에 가던 28세 여성 키티 제노비스가 윈스턴 모즐리라는 범인에게 살해당한 사건이었다. 911을 낳은 '방관자 효과' 보도 당시 NYT는 여성이 비명을 지르며 칼에 찔리는 35분 동안 주변 건물에서 38명이 목격하고도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고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충격적인 내용의 이 보도는 많은 사람들이 구경꾼처럼 서로 눈치만 보다가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는 방관자 효과라는 말을 낳았고, 급기야 미국 정부에서 긴급전화의 ..

공작 (블루레이)

기사로 언론에 많이 소개된 박채서는 참으로 독특한 인물이다. 3 사관학교를 나와 각종 훈련과 교육을 받고 소령 계급으로 국군정보사령부 공작단 본부에서 근무하던 그는 국가안전기획부의 지시로 이중 스파이 노릇을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남북한을 오가며 이중 스파이 활동을 한 것처럼 가장한 안기부의 공작원이었다. 당시 안기부가 그에게 부여한 암호명이 흑금성이었다. 사업가를 가장해 중국과 북한을 드나들던 박채서는 북에서 꽤나 신임을 얻어 김정일까지 만났다. 덕분에 그는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이 주도한 북풍을 막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에 일조했다. 북풍이란 지금의 자유한국당이 뿌리를 둔 신한국당에서 선거에 이기기 위해 북한에 무력 도발을 부탁하고 몰래 지원한 것으로, 북에서 일어난 바람이라는 뜻의 북풍 ..

손님

김광태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손님'(2015년)은 우리에게 익숙한 독일 우화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를 모태로 했다. 6.25 전쟁 직후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서울로 향하던 악사(류승룡)가 산골 외딴 마을에서 겪게 되는 괴이한 이야기를 다뤘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이야기가 어찌 흐를 지 뻔히 짐작이 간다. 마을을 습격한 쥐떼와 악사가 나서서 이들을 퇴치한 뒤 전개되는 내용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로 승부를 걸려면 결국 남는 것은 볼거리 뿐이다. 그래서 김감독은 간간히 집어 넣은 유머 코드와 영화 '이끼'를 연상케 하는 괴이한 분위기로 승부를 걸었다. 하지만 어설픈 유머는 그다지 파괴적이지 않고 괴이한 분위기는 '이끼'와 너무 닮았다. 마을을 지배하는 위압적인 촌장과..

영화 2015.07.11

군도

1960년대 국내에 만주 웨스턴이라는 장르가 유행했다. 당시 인기있던 서부극의 배경을 1930년대 무법천지 일제하의 만주로 바꿔서 우리 식으로 재해석한 서부극이다. 윤종빈 감독의 '군도'는 서부극에 가까운 서사적 구조를 갖고 있다. 서부극 중에서도 스파게티 웨스턴에 가깝다. 정통 미국식 서부극이 보안관에 의한 법 집행, 즉 공권력의 정당성 만을 정의로 본 반면에 이탈리아 감독들이 만든 스파게티 웨스턴은 서부극의 공간을 무주공산의 권력 공백으로 봤다. 즉, 공권력도 악당이 될 수 있고 악당도 정의가 될 수 있는 아노미 상태에서 쓰러져가는 약자들에 초점을 맞췄다. 즉, 약자를 괴롭히면 공권력도 악당이고, 그들을 위해 총을 뽑으면 악당도 영웅이 된다는 시각이 바로 스파게티 웨스턴과 미국식 정통 서부극의 차이다..

영화 2014.07.27

고고70 (블루레이)

1970년대 유행했던 고고클럽은 젊음의 해방구였다. 12시에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리면 갈 곳 없는 청춘들이 고고클럽에 모여 통행금지가 풀리는 새벽 4시까지 몸을 흔들며 젊음을 발산했다. 최호 감독의 '고고 70'(2008년)은 이제는 빛바랜 사진 같은 1970년대 추억을 화려하게 되살린 작품이다. 단순 지나간 시대상을 조명한 게 아니라 신나는 노래와 춤으로 재구성했다. 모델이 된 것은 1970년대 고고클럽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데블스라는 실존 밴드다. 1968년 결성돼 70년대를 주름잡다가 1980년에 해산한 데블스는 당시로서는 드문 소울 뮤직을 지향하며 요란한 퍼포먼스로 인기를 끌었다. 영화는 70년대 고고클럽의 풍경을 어색하지 않게 잘 구사했다. 특히 실제 악기 연주와 춤을 직접 익혀 공연하듯 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