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이성재 3

플란다스의 개 (블루레이)

2003년 10월, 영화 '살인의 추억' 개봉 후 DVD 작업을 한창 할 때 봉준호 감독을 인터뷰했다. 지금은 사라진 DVD 잡지들에 한창 타이틀 리뷰를 쓰던 때여서 궁금한 게 많았던지라, 봉 감독에게 '살인의 추억' DVD 이야기를 주로 질문했다. 봉 감독이 워낙 얘기를 잘해서 예정된 1시간을 훌쩍 넘겨 대화를 나눈 뒤, 일어서기 전에 싸인을 부탁하며 '플란다스의 개'(2000년) DVD 타이틀을 내밀었다. 봉 감독이 자신의 첫 작품이라 애정이 많이 간다며 은근히 좋아하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나온 블루레이 타이틀을 보니 그때 기억이 새록 새록 떠오른다. 봉 감독의 데뷔작인 이 작품은 본명이 매리 루이스 드라 라메인 영국의 동화작가 위다가 쓴 동화 '플란다스의 개'와 아무 상관이 없다. 동화를 토대로 ..

데이지 (감독판)

곽재용 감독이 극본을 쓰고 '무간도'를 만든 유위강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데이지'(2006년)는 장편 뮤직비디오 같은 영화다. 이야기는 엉성하지만 촬영감독 출신의 유위강이 잡아낸 감각적인 영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류의 연애소설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 여인을 둘러싸고 살인청부업자와 국제경찰인 두 남자의 엇갈린 사랑이 비극으로 치닫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이국적인 풍경이 가득 펼쳐지는 영상만큼은 감탄이 나올 만큼 깔끔하게 잘 찍었다. 특히 '화양연화'에서 가슴을 아리게했던 음악을 만든 우메바야시 시게루가 담당한 음악이 영상과 아주 잘 어울렸다. DVD는 20분 가량 추가된 감독판과 극장판을 모두 수록했다. 그런데 감독판이라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홀리데이 (LE)

"88올림픽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0월의 일요일. 서울 북가좌동 주택가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집 담장에서 지켜본 탈주범 지강헌의 최후 모습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담배를 꼬나문 채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던 적의 가득한 눈빛, 창틀을 부여잡고 폭포처럼 쏟아내던 절규, "사랑받고 싶었다" "생명이 몇 시간 남았는 지 모르지만 따사로운 햇빛을 받고 싶다"는 등... 그리고 유리조각으로 목을 긋기 전 세상을 향해 조롱하듯 날린 섬뜩한 미소까지. 무엇보다 귓가에 선연한 것은 비지스의 팝송 '홀리데이'의 애잔한 선율이다. 지강헌은 경찰에 요구해 받은 테이프를 방안 카세트에 꽂고 한껏 볼륨을 올렸다. 그리고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따라 불렀다. 유리 조각으로 자해하고,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