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이순재 3

영자의 전성시대

1970년대 나온 소위 '호스티스물'에 대한 편견이 하나 있다. 바로 야하다는 것. 지금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할 수 있는 것보다 하면 안되는게 더 많았던 서슬퍼런 독재정권 시절인 만큼 여자들의 속옷만 보여도 거의 포르노처럼 입소문을 탔다. 물론 나중에는 의도적으로 흥행을 노리고 싸구려로 찍어낸 호스티스물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70년대 호스티스물의 효시를 이룬 작품이 바로 김호선 감독의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1975년)다. 당시 TV에 갓 얼굴을 내민 신인 탤런트였던 염복순을 일약 스타로 만든 이 작품은 매춘부를 다루긴 했지만 결코 포스터처럼 야한 영화가 아니라 사회고발성 메시지가 강한 드라마다. 이 작품은 도시와 공업 위주의 편향된 경제개발 논리에 밀려 먹고 살기 위해 ..

굿모닝 프레지던트

참 실없다. 대통령이 복권 1등에 당첨되자 기절을 한다. 당첨되면 기부하겠다는 공언이 생각나 또 기절을 한다. 누구는 대통령에게 달려가 아버지를 위해 신장 한 쪽을 달라고 떼를 쓴다. 그런가하면 무엇하나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대통령의 반려자는 공식 석상에서 이혼을 선언한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 대통령에게 실없는 일들만 잔뜩 일어난다. 이쯤되면 즐거운 웃음이 아니라 어이없는 실소가 쏟아진다. '기막힌 사내들' '아는 여자' '간첩 리철진' 등 허를 찌르는 기발한 웃음을 선사하던 장진 감독의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린 작품이다. 세 명의 대통령이 벌이는 이야기는 아이들의 실없는 농담처럼 황당하고 허망하다. 너무나도 현실을 외면한 꿈 같은 이야기, 그마저도 기분 좋은 꿈이 아닌, 번..

영화 2009.10.25

픽사 스튜디오가 내놓은 10번째 애니메이션 '업'(Up, 2009년)은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닮았다. 단순히 주인공이 78세의 노인이라서가 아니다. 오랜 세월 간직한 꿈을 버리지 않고 노년에도 주저없이 꿈을 찾아 집을 나선 점이 닮았다. 대신 목적을 이루고 난 뒤의 결말은 서로 다르다. 가족이 보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을 감안한 결론이다. 길 위에 선다는 것은 참 쉽지 않다. 그동안 누려온 것을 툴툴 털고 미련없이 떠나야 하기 때문. 대신 '업'의 주인공은 소중한 추억들을 한아름 챙겼다. 그마저도 자신의 절대 가치를 위해서는 미련없이 던지는 용기를 보여준다. '던진다'는 것은 나이를 먹을 수록 하기 힘든 행동이다. 소유의 무게만큼 미련도 늘기 때문이다. 그와 비례해 꿈은 바래져 간다. 그것이 ..

영화 2009.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