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이와시로 타로 4

적벽대전2 최후의 결전 (블루레이)

전작에서 변죽만 올린 오우삼 감독이 본격적으로 삼국지의 하일라이트인 적벽대전의 장관을 풀어낸 작품이 '적벽대전2 최후의 결전'(2009년)이다. 이 작품에서는 오나라의 화공과 유비의 협공으로 조조의 백만대군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과정을 다뤘다. 대륙의 스케일답게 전투 장면을 막대한 인원과 컴퓨터그래픽을 동원해 화려하게 묘사했다. 비록 컴퓨터그래픽이 약간 어설퍼 보이는 부분이 있지만 대함대가 불에 타 무너지는 장면을 꽤 그럴듯하게 그렸다. 해상 전투 못지 않게 요새 안에서 벌어지는 전투와 오나라의 상륙전은 마치 고대판 동양의 '라이언 일병구하기'를 연상케한다. 하지만 영화 만으로 적벽대전을 이해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오우삼 특유의 화법으로 원작을 상당 부분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우선 제갈공명과 짝짜..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

예쁘장한 소녀가 긴 칼을 휘두르며 사방에 피를 뿌린다. 아리따운 소녀와 피비린내의 잔혹함처럼 서로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의 묘미가 기타무라 류헤이 감독의 특징이다. 특히 그는 '버수스'에서 웃음과 폭력의 궁합을 끌어냈다면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에서는 절제된 미와 잔혹함의 결합을 선보였다. 그래도 공통점이자 기저를 이루는 것은 역시 끝간데 없는 잔혹 영상이다. 어려서부터 자객으로 자란 소녀가 세상의 전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칼을 휘두르는 내용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원작은 1994년에 연재된 코야마 유우의 유명 만화로, 28권이 출간됐으며 800만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감독은 원작 중에서도 잔혹한 부분만을 추려낸 것 처럼 시종일관 피의 향연을 펼친다. 고어류의 액션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밑도 끝도 없이 과..

살인의 추억 (블루레이)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년)은 우리 영화 중에서 걸작을 몇 편 꼽으라면 꼭 들어갈 작품이다. 탄탄한 내용과 연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훌륭한 영상, 애잔한 음악까지 이토록 완벽한 작품이 있을까 싶다. 김광림의 연극 '날 보러와요'를 각색한 이 작품은 그 해 500만명을 넘기며 최다 관객을 동원했다. 내용은 1986년부터 91년까지 경기 화성에서 6년간 10명의 부녀자가 죽은 연쇄강간살인사건을 다뤘다. '화성 연쇄 살인'으로 통하는 이 사건은 결국 범인을 잡지 못하고 공소 시효를 넘겨 영구 미제 사건이 됐다. 봉 감독은 안개 속처럼 뿌연 사건의 한 가운데서 범인을 쫓는 형사들의 안타까운 심정에 초점을 맞춰 숨막히는 드라마로 그려 냈다. 어찌나 심리 묘사가 탁월한 지 절로 형사들의 심정에 ..

피와 뼈

재일교포 감독인 최양일이 만든 '피와 뼈'(血と骨, 2004년)는 강렬한 제목만큼이나 흡입력 강한 작품이다. 제11회 야마모토 주고로 문학상을 수상한 양석일의 원작을 영화로 옮긴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 때 오사카로 건너가 파란만장한 삶을 산 김준평(기타노 다케시 北野武)이라는 사내의 이야기다. 젊은 시절 꿈을 안고 도일한 그는 살아남기 위해 타인에게 더없이 폭력적이고 위악적이다. 아내와 자식들은 물론이고 타인에게도 가혹한 폭력을 휘두르는 그는 사람들에게 가장이자 아버지이기 이전에 동물적인 본능을 내세운 남자이며 광기에 휩싸인 괴물로 기억된다. 최 감독은 일본 무사들의 동성애를 다룬 '고하토'에서 함께 연기한 기타노 다케시를 주연으로 기용해 세상을 험하게 산 사내와 가족의 이야기를 선 굵은 그림으로 보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