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이종혁 3

푸른 소금

이현승 감독의 '푸른 소금'은 간이 덜 밴 소금구이같은 영화다. '첩혈쌍웅' 같은 1980년대 홍콩 느와르 정서와 세련된 뮤직비디오를 닮은 영상이 어우러졌는데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느와르 액션이라고 부르기에는 미흡하고, 오히려 로맨스물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저격용 소총을 휘두르는 여자 암살자와 알고도 모른체 하는 조폭 두목의 연정이라는 설정 자체부터 부자연스럽다. 그 속에 한 없이 강한 척 하는 여전사와 마냥 쿨한 아저씨의 이미지는 오히려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영화의 성격을 애매하게 만들었다. 이야기 또한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어차피 영화라는게 허구이긴 하지만 손쉽게 오가는 총기 거래나 서부극처럼 총질이 난무하는 장면들은 국내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지나쳤다. 또 실종된 여주인공의 친구를..

영화 2011.09.10

미쓰 홍당무

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2008년)를 보면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이 생각난다. 라쇼몽은 재판장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 본 탓에 서로 다른 증언을 하며 혼란이 발생하는 이야기다. 미쓰 홍당무도 마찬가지다. 다소 엉뚱하고 4차원같은 인간 군상들이 자신만의 관점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재단하며 사건은 비틀리고 꼬인다. 특히 막판 방은진이 등장인물들을 어학실에 불러 모아놓고 시시비비를 따지는 장면은 영락없는 라쇼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돋보이는 것은 독특한 캐릭터 때문이다. 안면홍조증을 갖고 있는 여인과 그가 좋아하는 과거 스승이자 지금은 동료인 교사, 왕따 소녀, 백치미 여인 등 캐릭터들이 자기만의 분명한 색깔을 갖고 살아 있다. 특히 등장인물들이 괴로운 ..

라듸오 데이즈

하기호 감독의 데뷔작 '라듸오 데이즈'(2008년)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류승범, 김뢰하, 이종혁 등 괜찮은 배우들과 국내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가지고도 제대로 영화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무 웃음에 집착한 탓이 아닐까 싶다. PPL과 광고 등 요즘 방송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30년대 라디오 방송에 덧입혀 풍자한 코미디는 독특했다. 여기에 배우들의 스캔들, 조금만 인기있으면 늘리는 연장방송과 여배우들의 주연 다툼 등 현대 방송극의 문제점도 날카롭게 꼬집었다. 그러나 아이들 학예회처럼 너무 난삽하게 이야기를 벌려놓다 보니 구성이 산만해졌다. 그나마 볼 만 한 것은 맨 마지막의 엔딩 타이틀 뿐이었는데, 이마저도 영화 '자토이치'를 흉내낸 감이 강하다. 2.35 대 1 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