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장진영 3

반칙왕 (블루레이)

1970년대 흑백 TV 시절 최고의 스포츠 중계방송은 단연 프로레슬링이었다. 레슬링이 있는 날이면 집으로 뛰어들어와 책가방을 던져두고 TV 앞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 김일, 여건부, 천규덕 등은 당대 최고의 영웅이었고 상대적으로 일본의 이노키 선수는 최고의 악당이었다. 레슬링 인기가 얼마나 높았던지, 일본에서 만든 '타이거마스크'라는 TV 만화영화도 들여와 방송했다.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2000년)은 과거 레슬링에 대한 향수가 어린 작품이다. 특이하게도 7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으나 지금은 쇠락한 프로레슬링을 통해 현대인들의 꿈과 삶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만큼 웃음과 페이소스가 공존하는 작품이다. 그다지 유능하지 못한 은행원(송강호)이 어느 날 우연히 레슬링 도장을 발견하고 어린 시절 우상..

싱글즈 (블루레이)

9자가 들어가는 나이는 왠지 불안하다. 인생의 10년 단위가 저무는 것이지만 1999년처럼 왠지 한 시대가 끝나는 느낌이 든다. 특히 29세라는 나이는 그런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킨다. 더러 20대와 30대의 언저리에서 마치 파릇파릇한 청춘의 20대를 흘려 보내고 아저씨 아줌마가 되는 30대로 접어드는 공포감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오죽했으면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가 다 나왔을까. 일본의 유명 드라마 작가 카마타 토시오는 바로 이 불안한 '29세'를 놓치지 않았다. 29세의 패션업체 여직원은 생일에 남자에게 채이고, 원형 탈모증이 생겼으며, 꿈꿨던 파리컬렉션에도 후배에게 밀려 가지 못한다. 카마타 토시오는 잔뜩 꿈에 부풀지만 제대로 이뤄지는게 없는 불안한 29세의 격정을 드라마 대본으로 만들어 인기를 끌..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싱글즈' 개봉 무렵 배우 장진영을 만났다. 엄정화와 함께 인터뷰를 했는데, 차분하면서도 강단있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그런지, 김해곤 감독의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2006년)에서 보여준 장진영의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장진영에 대한 기억과 겹쳐 그가 가장 빛을 발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장진영은 이 작품에서 애인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술집 여자로 나와 적당한 독기와 열정으로 불꽃처럼 타올랐다. '국화꽃 향기' '싱글즈' 등에서도 열심히 연기했지만 이 작품 만큼 빛을 발하지는 못한 것 같다. 장진영은 이 작품이 흥행에 참패한 뒤 출연을 후회했다고 한다. 험한 욕설을 내뱉으며 처절하게 망가진 모습이 이미지를 실추시켰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본인은 아쉬운 부분이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