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정경호 7

손님

김광태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손님'(2015년)은 우리에게 익숙한 독일 우화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를 모태로 했다. 6.25 전쟁 직후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서울로 향하던 악사(류승룡)가 산골 외딴 마을에서 겪게 되는 괴이한 이야기를 다뤘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이야기가 어찌 흐를 지 뻔히 짐작이 간다. 마을을 습격한 쥐떼와 악사가 나서서 이들을 퇴치한 뒤 전개되는 내용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로 승부를 걸려면 결국 남는 것은 볼거리 뿐이다. 그래서 김감독은 간간히 집어 넣은 유머 코드와 영화 '이끼'를 연상케 하는 괴이한 분위기로 승부를 걸었다. 하지만 어설픈 유머는 그다지 파괴적이지 않고 괴이한 분위기는 '이끼'와 너무 닮았다. 마을을 지배하는 위압적인 촌장과..

영화 2015.07.11

구타유발자들

원신연 감독의 '구타유발자들'(2006년)은 다분히 연극적인 영화다. 강원도 산골 개울가라는 지극히 제한된 공간에서 통털어 8명 뿐인 배우들이 지지고 볶는다. 열려 있는 공간인데도 불구하고 달아날 수 없는 상황은 밀실에서 느끼는 폐쇄공포증같은 긴장감을 유발한다. 영화의 주제가 낯선 곳에서 느끼는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다보니 긴장감의 강도가 만만찮다. 내용은 여제자를 유혹하려고 낯선 산골로 들어간 대학 교수가 뜻하지 않게 지역 불량배들을 만나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을 그렸다. 여기에 돌발변수처럼 동네 경찰이 끼어들면서 상황은 예기치 못하게 흘러간다. 무엇보다 영화는 습관처럼 때리고 맞는 폭력의 내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때린 사람은 경찰이 되고 맞던 사람은 또 맞는다"는 한석규의 대사는 때리고 맞는 사..

거북이 달린다

전통적으로 형사물이라면 주먹까지 잘 쓰는 잘 생긴 형사가 사악하고 못되게 생긴 범인을 잡아 혼내주는게 정석이다. 그런데 이연우 감독의 '거북이 달린다'(2009년)는 그렇지 않다. 탈주범 송기태(정경호)는 잘생긴데다가 홍길동 뺨치게 잘 싸운다. 반면 그를 쫓는 형사 조필성(김윤석)은 싸움도 못하고 투박하게 생겨 먹었다. 아니, 형사도 잘 하는게 하나 있다. 돈 때문이기는 하지만 범인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근성이다. 이미 일반 형사물과 달리 범인과 형사가 뒤바뀐 어긋난 설정에서부터 일말의 기대감을 갖게 만든 이 작품은 느긋한 충청도식 유머와 투박한 액션으로 즐거움을 준다. 절로 웃음이 터지거나 감탄이 나올 만큼 액션을 훌륭하게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삐걱거리는 서민의 투박한 삶을 닮은..

님은 먼 곳에 (DVD)

국민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는 격동의 시대였다. 월남전부터 문세광 사건, 박정희 대통령 서거까지 일련의 사태들이 10년의 역사 속에 소용돌이 치듯 지나갔다. 특히 월남전은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 이상문의 '황색인' 등 월남전 소재 소설들을 통해 너무나도 익숙하다. 그만큼 월남전은 70년대를 보낸 사람들에게는 떼어낼 수 없는 정서의 한 부분이다. 여기에 익숙한 노래까지 한 자락 곁들인다면 옛날 앨범을 다시 들추는 것처럼 지나간 시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으로 가슴 한 켠이 저려온다.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 곳에'(2007년)가 바로 그런 영화다. 벌써 제목에서부터 신중현이 만들고 김추자가 부른 같은 제목 노래의 서러운 가락이 들려오는 것 같다. 가부장적 질서가 나라 전체를..

님은 먼 곳에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 곳에'는 대중적인 오락 영화를 좋아한다면 쉽게 볼 만한 작품은 아니다. 줄거리를 강조하는 하이틴 소설같은 TV드라마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과 달리 흘러간 정서를 담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요즘 정서가 아닌 지나간 세월과 1960, 70년대 문화가 녹진 녹진하게 묻어 있는 옛 것이라는 점이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도대체 그런 가수가 있었던가 싶은 '쇼쇼쇼' 시절의 김추자의 히트곡 '님은 먼 곳에'를 제목으로 붙인 것부터 시작해서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팔려가다시피 참전한 월남전, 여기에 70년대 트로이카였던 정윤희를 닮은 수애까지 영화 속 모든 게 옛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는 월남전에 참전한 남편을 찾아 떠나는 아내(수애)의 이야기다. 사랑하지도 않고 애틋한 정도 없는 여..

영화 2008.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