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제니퍼 제이슨 리 6

서던리치 소멸의 땅(블루레이)

모르는 상대에 대한 두려움은 배가 된다. 자고로 공포란 무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면 더더욱 무서울 수밖에 없다. 모든 공포영화와 외계 생명체를 다룬 SF영화들은 이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그 존재가 가공할 만큼 크거나 아예 보이지 않게 작다는 정도.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서던 리치 소멸의 땅'(Annihilation, 2018년)에 등장하는 적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 속 외계 생명체는 바이러스와 흡사하다. 어느 날 바닷가 숲 속에 벼락 치듯 찾아온 외계 생명체는 숙주가 될 생명체에 침입해 세포를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처럼 숙주의 세포를 복제하고 변이를 일으킨다. 그 모습이 때로는 기이하고 때로는 끔찍하다. 마치 사람이 되려다 그..

분노의 역류(4K 블루레이)

론 하워드 감독의 '분노의 역류'(Backdraft, 1991년)는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을 구하는 소방관들 이야기다.주인공 브라이언(윌리엄 볼드윈)은 아버지와 형이 모두 화재 현장에서 화마와 싸우는 소방관 집안 출신이다. 어려서 아버지가 화재 현장에서 사망하는 것을 지켜본 브라이언은 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그러면서 아버지같은 소방관이 되려는 갈망이 있다. 그래서 소방학교에 들어가 소방관이 되지만 불을 정복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영웅적인 형의 행동을 보며 위축될 수 밖에 없는 브라이언은 잇따라 발생하는 방화 사건을 추적하면서 불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게 된다. 큰 줄기는 소방관의 영웅적인 행동을 다룬 영웅담이지만 그 속에 가족애와 형제애를 다룬 휴머니즘을 담고 있다.한편으로는 아버지..

헤이트풀8 (블루레이)

'헤이트풀8'(The Hateful Eight, 2015년)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만든 두 번째 서부극이다. 타란티노의 서부극은 특이하게 흑인 건맨이 주인공이다. 전편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는 제이미 폭스가 복수에 나선 총잡이 장고로 나왔고 이번 작품에서는 새뮤얼 잭슨이 현상금 사냥꾼으로 등장한다. 이 같은 특징은 타란티노 감독의 진보적인 시각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서부극하면 으례히 백인 총잡이들과 인디언들이 나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흑인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를 단순히 흑인들의 출연 비중을 높이는 것에서 벗어나 주요한 역할을 맡겨 백인 중심주의적 역사관과 시각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여기에는 어려서부터 블랙스플로테이션 영화를 즐겨보고 흑인들과 어울려 자란 환경도 한 몫 했다. 197..

아노말리사 (블루레이)

찰리 카우프만과 듀크 존슨이 공동 감독한 '아노말리사'(Anomalisa, 2015년)는 내용보다 독특한 구성 때문에 관심을 끄는 작품이다. 찰리 카우프만의 작품이 언제나 그렇듯 이 영화 역시 인간 내면의 탐구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성공한 저자이자 연설가인 주인공이 신시내티에 강연을 위해 출장을 갔다가 그곳에서 새로운 사랑을 찾는 이야기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자아를 찾기 위한 중년 남자의 일탈이라는 내용을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다룬 점이 독특하다. 그것도 일반적인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과 달리 눈을 가로지르는 얼굴 절개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인형을 도입했고, 기존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정사 장면을 인형을 통해 실감나게 재현했다. 여기에 원작자인 찰리 카우프만이 처음 선보였던 연극적 기법을 그대로 ..

인 더 컷

맥 라이언이 전라로 출연한다고 해서 화제를 모은 제인 캠피온 감독의 '인 더 컷'(In The Cut, 2003년)은 생각만큼 야한 작품은 아니다. 물론 수잔나 무어의 에로틱 스릴러 소설이 원작인 만큼 야릇한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원초적 본능'이나 틴토 브라스 감독 시리즈를 생각한다면 크게 실망할 수 있다. 그래도 맥 라이언의 색다른 변신과 제인 캠피온 감독 특유의 무서운 집중력이 힘을 발휘한 작품이다. 영화는 어느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와 여교사 사이에 싹트는 사랑을 다루고 있다. '피아노' 등 제인 캠피온 영화가 그렇듯 특유의 내상(트라우마)을 안고 있는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미국에서는 스릴러로서 매력이 떨어진다며 평론가들이 혹평을 퍼부었지만 그렇게까지 실망스런 작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