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제주 2

지슬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만장일치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오멸 감독의 '지슬'(2013년)은 숨이 막힐 정도로 강렬한 영상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것도 현란한 색들이 난무하고 입체영상이 스크린을 뚫는 시대에 아득한 시절 세상을 주름잡은 공룡같은 흑백 영상으로 승부를 걸었다. 오 감독이 제주 4.3 사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룬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흑백 영상은 참으로 아름답다. 흰 하늘을 배경으로 검은 가지를 뻗친 나무와 오롯이 흰 눈을 이고 선 집들을 보면 여백의 미를 살린 동양화 같다. 여백의 미는 생각을 정리할 틈을 준다. 시퀀스가 끝날 때마다 하얗게 또는 온통 검게 변하는 화면은 보는 이의 감정으로 서서히 차오른다. 특히 온통 어둠 뿐인 지하 동굴에 숨은 사람들이 부유하듯 화면을 떠다니며 두런 두런..

영화 2013.04.07

건축학개론 (블루레이)

이용주 감독의 '건축학개론'(2012년)은 1990년대 청춘들을 위한 송가다. 1994년 대학 새내기들을 주인공으로 그 시절 첫 사랑의 아련한 추억을 잔잔한 영상으로 담아 냈다. 한동안 '친구' '말죽거리잔혹사' '고고70' 등 1970년대와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등장하더니, 이제는 90년대 시대상을 담은 작품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벌써 90년대 학번들을 다룬 작품이 등장했나 싶었는데, 그 시절을 모르는 세대들도 이 영화를 많이 봤다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특히 수지가 이제훈에게 듀오 전람회의 노래 '기억의 습작'을 들려주며 "너 전람회 몰라?"라고 묻는 장면에서 '졸라맨'으로 들었다는 사람이 많다는 이 감독의 설명을 듣고 실소가 나왔다. 그만큼 전람회 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