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만장일치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오멸 감독의 '지슬'(2013년)은 숨이 막힐 정도로 강렬한 영상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것도 현란한 색들이 난무하고 입체영상이 스크린을 뚫는 시대에 아득한 시절 세상을 주름잡은 공룡같은 흑백 영상으로 승부를 걸었다. 오 감독이 제주 4.3 사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룬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흑백 영상은 참으로 아름답다. 흰 하늘을 배경으로 검은 가지를 뻗친 나무와 오롯이 흰 눈을 이고 선 집들을 보면 여백의 미를 살린 동양화 같다. 여백의 미는 생각을 정리할 틈을 준다. 시퀀스가 끝날 때마다 하얗게 또는 온통 검게 변하는 화면은 보는 이의 감정으로 서서히 차오른다. 특히 온통 어둠 뿐인 지하 동굴에 숨은 사람들이 부유하듯 화면을 떠다니며 두런 두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