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조 라이트 6

팬 (블루레이)

피터팬은 소설, 영화, 연극 등으로 여러 번 제작됐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 디즈니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1953년에 선보인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초록색 옷을 입은 경쾌한 소년 피터팬이 하늘을 날며 갈고리 손을 지닌 해적과 대결하는 내용이다. 워낙 이 내용이 널리 알려져 있다보니 이후 나온 작품들은 차별화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후크'에서 로빈 윌리엄스를 주연으로 써서 아예 피터팬을 40대 아저씨로 만들어 버렸다. 웃자라다 못해 폭삭 늙은 피터팬은 그만큼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본 피터와 다르긴 했지만 이질적인 이미지로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조 라이트 감독도 '팬'(Pan, 2015년)에서 다른 방법을 썼다. 워킹타이틀에서 '어톤먼트' '오만과 편견' 등 진중한 사랑..

안나 카레니나 (블루레이)

'전쟁과 평화' '부활'과 함께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3대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안나 카레니나'는 그동안 10여차례에 걸쳐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 등으로 제작됐다. 그만큼 나중에 나온 영화들은 내용이 익히 알려졌으니 볼거리로 승부 할 수 밖에 없다. 얼마나 문학적 상상력을 영상으로 구현했는 지, 문학작품 최고의 여주인공으로 꼽히는 안나 카레니나를 얼마나 그럴 듯 하게 소화했는 지가 승부를 가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조 라이트 감독의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 2012년)는 절반의 성공이다. 조 라이트 감독이 워낙 미술과 의상 조명 구도 등 미장센에 공을 들이는 만큼 볼거리는 훌륭하다. 감독은 특이하게도 이 작품을 연극 무대처럼 꾸민 세트에서 대부분 촬영했다. 으례히 러시아 ..

한나 (블루레이)

영화 속에 여전사들이 등장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에이리언'부터 '지아이 제인''니키타' '툼레이더' '레지던트 이블' 등 숱하게 많다. 그런데 최근 여전사들이 어려지기 시작했다. '킥 애스'를 필두로 '서커펀치'에 이어 '한나'까지 10대 소녀들이 눈하나 깜짝 않고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인다. 세상이 흉악해진 탓도 있지만, 신기한 볼거리와 자극을 찾는 요즘 영화들의 추세와도 무관치 않은 듯. 조 라이트 감독의 '한나'(Hanna, 2011년)도 마찬가지. 16세 소녀 한나는 숲 속에서 세상과 격리된 채 아버지와 둘이서만 살았다. 아버지가 그에게 가리킨건 필살의 격투기와 사격술. 아버지의 목적에 따라 숲에서 나온 한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세상과 충돌한다. 이 과정에서 그의 탄생 비밀이 하나..

솔로이스트

조 라이트 감독의 '솔로이스트'(The soloist, 2009년)는 LA타임스의 기자 스티브 로페즈가 우연히 공원에서 만난 노숙자 나다니엘 에이어스에 대해 쓴 연재 칼럼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바이얼린을 잘 켜는 노숙자 에이어스는 알고 봤더니 줄리어드 음대 중퇴생이었다. 어떻게 줄리어드 음대에 들어갈 정도로 뛰어난 실력자가 노숙자가 됐을까. 순전히 기자의 호기심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진솔한 친구가 되는 감동 스토리로 끝을 맺는다. 기자 생활을 하다보면 기사를 쓰기 위해 만났다가 인간적 친구가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만큼 서로 인간적으로 통할 수 있는, 즉 정서적 교감이 이뤄져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직업적인 공감이 가는 작품이다. 특히 스티브 로페즈 기자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하..

어톤먼트

조 라이트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오래된 사진첩을 보는 것처럼 따뜻하다. 그것이 가슴 벅찬 사랑 이야기든, 애잔한 이별 이야기든 상관없이 그가 만든 따뜻한 영상은 오래도록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마법같은 힘이 깃들어 있다. '오만과 편견'이 그랬고 후속작인 '어톤먼트'(Atonement, 2007년)도 마찬가지다. 이완 맥이완의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이 작품은 질투에 눈이 먼 소녀의 거짓말이 가져온 가슴아픈 이별과 안타까운 사랑을 그리고 있다. '오만과 편견'처럼 창 틈으로 스며드는 햇살과 은은한 촛불 등 국지 조명을 통해 인물들을 아련하게 표현한 영상이 일품이다. 마치 한 편의 영상시를 보는 것처럼 그림이 아름답다. 원작 소설만큼 복잡다단하게 얽히고 설킨 인물들의 감정의 깊이를 모두 담아내지는 못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