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진구 6

쎄시봉

서울 명동에 있었던 통기타 살롱 쉘부르, 무교동에 자리 잡았던 음악감상실 쎄시봉은 1960년대말, 70년대를 풍미했던 통기타 문화의 상징이다. 이런 곳들을 통해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김세환 양희은 이태원 박은희 남궁옥분 이문세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당연히 지금도 쉘부르, 쎄시봉 하면 이들의 얼굴과 함께 유명했던 노래들이 떠오른다. 그만큼 쎄시봉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면 1960, 70년대 젊은이들의 문화를 대표하는 노래들과 가수들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김현석 감독의 영화 '쎄시봉'은 여러모로 실망스럽다. 쉘부르와 쎄시봉으로 대표되는 시대의 노래들과 가수들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들을 소품처럼 차용해 남녀의 흘러간 사랑 이야기를 신파극처럼 써..

영화 2015.02.07

명량

이순신 장군을 다룬 영화의 최대 난관은 바로 이순신을 그리는 것이다. 1970년대 국민학교 교과서에 무과 시험 중 낙마했으나 버들가지로 다리를 동여매고 시험을 치른 장군의 일화가 등장할 만큼 익숙한 존재인지라, 피상적으로라도 장군을 아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군에 얽힌 연대기적 이야기들은 동어반복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그 이면에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인간 이순신을 그려야 하는 것이 난제인데, '난중일기'를 제외하고 그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사료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최단 기간 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김한민 감독의 '명량'(2014년)도 마찬가지 한계를 안고 있다. 1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해전 장면은 볼 만 하나 이순신의 모습이 피상적으로 ..

영화 2014.08.15

트럭

시체를 가득 실은 트럭에 올라탄 연쇄살인마.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체를 실어나르는 트럭 운전사와 살기 위해 도망치는 연쇄살인마의 위험한 동행이라는 설정은 '트럭'(2007년)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요소다. 하지만 이게 전부다. 범상치 않은 설정과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 반쪽이 보이는 표지에 반해 작품을 선택했다면 후회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성긴 설정이다. 누구나 그럴 법 하다며 고개를 끄덕일 만한 정교하고 치밀한 구성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우연과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반복적으로 되풀이 될 뿐이다. 이는 지나치게 설명을 생략하고 작위적인 내용으로 채운 권형진 감독의 연출을 탓할 수 밖에 없다. 느닷없는 룸살롱의 살인극이나 시체더미에 실린 여자가 죽지 않은 이유, 아이의 ..

26년

조근현 감독의 '26년'은 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유족들이 모여 전두환 전 대통령을 단죄하는 내용의 영화라고 해서 기대가 컸다. 실제 역사와 상상을 어떻게 버무렸을 지 궁금했는데, 기대 이하로 실망스럽다. 강풀의 원작 만화를 보지 못해서 영화 내용이 원작에 얼마나 충실한 지 알 수 없지만 영화의 내용은 너무 치졸하다. 제작진의 역사 인식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주인공들의 단죄는 개인의 분노와 복수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초반 5.18 항쟁 당시 개개인의 과거 사연을 만화로 처리해 현재 시점의 실사와 차별한 시도는 좋았지만 이후 이야기의 진행은 너무 답답하고 맥이 빠지게 흘러간다. 왜 그리 등장인물들의 사설은 길고 구구절절한 지 일장 연설을 듣는 것 같고, 막상 복수에 나선 행동은 마치 골..

영화 2012.11.30

마더 (블루레이)

봉준호 감독의 '마더'(2009년)는 내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남의 자식을 위험에 빠트리는 일을 마다않는 무서운 모정을 다루고 있다. 엄마가 내뱉는 "우리 아들 발톱의 때만도 못한 새끼가"라는 한 마디의 대사가 이를 함축하고 있다. 바보 취급을 받는 아들(원빈)이 어느날 살인사건 용의자로 경찰에 잡혀가면서 엄마(김혜자)의 고난은 시작된다. 아무도 아들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엄마는 아들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외롭고 힘든 싸움을 한다. 공포 영화의 거장 웨스 크레이븐 감독은 "선악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다"라는 말을 했다. 그의 말처럼 영화 속의 섬뜩한 모정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선과 악이 버무려져 있다. 이를 미스테리 소설처럼 재미있으면서 긴장감 넘치게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김혜자의 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