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최강희 4

와니와 준하: 블루레이

김용균 감독의 '와니와 준하'(2001년)는 동성애, 이복 남매간에 사랑, 혼전 동거 등 지금 봐도 쉽게 다루기 힘든 소재들을 다룬 영화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이니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면 꽤 민감한 이야기들을 감성적으로 건드린 앞서간 영화이자 금기에 도전한 작품이다. 그렇다고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은근슬쩍 묻어두는 스타일이다. 즉 분위기와 정황으로 민감한 이야기를 전할 뿐 보기에 부담스러운 그림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기본 뼈대는 애니메이션 제작사에서 일하는 여주인공 와니(김희선)와 시나리오 작가인 준하(주진모)의 사랑 이야기다. 다만 와니를 비롯해 그의 주변 인물들이 범상치 않다 보니 민감한 이야기들이 에피소드처럼 섞여 들었다. 언뜻 보면 이복 남매간 사랑 이야기는 강신재의 단편 ..

째째한 로맨스

김정훈 감독의 '째째한 로맨스'는 만화 스토리 작가인 여성과 만화가인 남성이 만나 공모전에 출품할 성인 만화를 그리면서 사랑이 싹트는 내용이다. 좌충우돌 발랄한 여작가 역은 최강희가, 고집 센 만화가 역은 이선균이 맡았다. 두 사람은 기존 드라마나 영화에서 맡았던 배역과 비슷한 모습이다. 그만큼 두 사람이 각자 맡은 배역은 잘 어울렸지만, 문제는 두 사람의 조합이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종일관 하이톤으로 영화 속 대사처럼 '붕붕 날라다니는' 최강희의 연기와, 역할상 소릴 질러대며 신경질 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선균의 연기는 서로 충돌해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고 겉돈다. 그들이 빚어내는 로맨스 또한 개연성이 떨어진다. 코미디를 표방한 만큼 대놓고 억지를 부리는 설정은 그렇다쳐도, 애니메이션도..

영화 2010.12.30

베스트셀러

이정호 감독의 '베스트셀러'는 미스터리보다 괴기물에 가깝다. 얼개는 추리 소설의 형태를 따라가지만 내용은 '전설의 고향' 같은 괴담이다. 그만큼 이야기의 전개에 관심을 끌게 하는 요소가 있지만, 너무 늘어지는 것이 단점이다. 등장인물의 심리묘사와 분위기로 긴장감을 몰아가려는 의도였겠지만 유장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관객의 진을 빼놓는다. 그렇다보니 후반부에 급격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전반부와 반대로 비약이 심하다. 관객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이야기의 해결을 위해 너무 무리하고 급격하게 진행시켰다는 느낌이다. 결국 논리적 전개에 구멍이 뚫리다보니 미스터리의 지적 유희를 놓치고 괴담으로만 치닫고 말았다. 그렇다고 괴담이 아주 몸서리쳐질 만큼 무서운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미스터리도 아니요 괴담도 아닌 어정쩡한 작..

영화 2010.04.18

여고괴담

박기형 감독의 '여고괴담'(1998년)은 우리 공포물 가운데 손에 꼽을 만한 빼어난 수작이다. 감독이 직접 쓴 탄탄한 시나리오와 더불어 입시위주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 메시지 전달력이 뛰어났다. 특히 공포물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익숙한 이야기와 환경을 다뤘기 때문이다. 화장실 귀신처럼 오래된 학교에 한두 가지씩 떠도는 귀신 이야기와 학교라는 건물이 주는 위압감과 폐쇄감을 적절히 이용했다. 예전 두발 및 교복자율화 이전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유난히 을씨년스럽던 풍경이 떠오른다. 불 꺼진 어두침침한 나무 마룻바닥 복도, 바람에 연통이 흔들리며 끊임없이 울려대던 삐걱거리는 쇳소리, 한낮에도 그늘이 져 해가 들지 않는 외따로 떨어진 화장실 건물, 을씨년스러운 뒷산과 이어진 쓰레기소각장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