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탁재훈 4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싱글즈' 개봉 무렵 배우 장진영을 만났다. 엄정화와 함께 인터뷰를 했는데, 차분하면서도 강단있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그런지, 김해곤 감독의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2006년)에서 보여준 장진영의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장진영에 대한 기억과 겹쳐 그가 가장 빛을 발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장진영은 이 작품에서 애인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술집 여자로 나와 적당한 독기와 열정으로 불꽃처럼 타올랐다. '국화꽃 향기' '싱글즈' 등에서도 열심히 연기했지만 이 작품 만큼 빛을 발하지는 못한 것 같다. 장진영은 이 작품이 흥행에 참패한 뒤 출연을 후회했다고 한다. 험한 욕설을 내뱉으며 처절하게 망가진 모습이 이미지를 실추시켰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본인은 아쉬운 부분이었겠지만..

당신이 잠든 사이에

김정민 감독의 '당신이 잠든 사이에'(2008년)는 산드라 블록이 출연한 할리우드의 로맨스 무비와 제목만 같은 대책없는 코미디 물이다. 술만 마셨다하면 필름이 끊기는 유진(예지원)은 어느날 술자리 직후 호텔에서 깨어난다. 같이 밤을 보낸 남자는 온데간데 없고 스위트룸과 고급 와인값이 포함된 240만원이 넘는 계산서만 남아있다. 그때부터 유진은 계산서만 남기고 달아난 남자 색출에 나선다. 본격적인 코미디를 표망했지만 이야기가 참 어정쩡하다. 김 감독 말마따나 세상 모든 영화가 진지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황당하고 억지스러워 공감대를 끌어내기 쉽지 않다. 여배우가 김지수에서 예지원으로 바뀌고 감독이 교체되는 우여곡절에서부터 영화가 흔들렸을 수 있다. 예지원이 대책없이 망가지고 탁재훈이 뜻밖에 진지한 연기를 펼..

누구나 비밀은 있다 (SE)

'누구나 비밀은 있다'(2004년)는 장현수 감독이 흥행을 위해 선택한 작품이다. '걸어서 하늘까지' '게임의 법칙' '본투킬' 등 남자들의 거친 세계를 다룬 영화를 주로 만든 장 감독이 흥행을 위해 선택한 코드는 섹스와 코미디다. 매력적인 청년(이병헌)이 세 자매(추상미, 최지우, 김효진)를 만나 다중으로 얽히는 내용은 제라드 스템브리지 감독의 '어바웃 아담'을 리메이크한 것. 메인 배우들 외에 정보석, 공효진, 탁재훈, 정준하 등 다양한 배우들의 깜짝 출연과 애니메이션 같은 화면 구성이 눈길을 끈다. 그러나 정작 감독이 노린 섹스와 코미디라는 흥행 코드는 그다지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화려한 성 담론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제대로 웃기지도 못하기 때문. 장 감독은 사람..

맨발의 기봉이 (SE)

권수경 감독의 데뷔작인 '맨발의 기봉이'(2006년)는 2003년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에 소개된 엄기봉씨의 실화를 토대로 만든 작품이다. 그러나 100% 다큐멘터리와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주요 뼈대는 실화에서 따왔지만 갖가지 극적인 이야기를 첨가해 다큐멘터리와 차별화를 꾀했다. 충남 서산군 고북면 정자리에 사는 엄기봉씨. 올해 마흔 셋인 그는 네 살 때 열병을 앓아 지능이 여덟 살 어린이에 머문 정신지체 1급 장애인이다. 몸이 불편한 여든 셋의 노모에게 틀니를 해주기 위해 마라톤 대회에 나가 1등을 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신발이 닳을까봐 늘 맨발로 연습을 한 그는 몇 번 마라톤 대회에 나가 완주를 했지만 한 번도 우승을 해보지는 못했다. 신현준이 엄기봉 역할을 맡아 쉽지 않은 역할을 소화하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