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티에리 아보가스트 3

라빠르망

질 미무니 감독의 '라 빠르망'(L'Appartement, 1996년)은 여러 사람의 운명을 농락한 팜므 파탈의 이야기다. 한 남자에 대한 집착과 사랑이 여러 사람의 운명을 뒤바꿔 놓으며 인생을 파멸로 몰고 가는 과정은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용납하기 힘들만큼 파괴적이다. 영화는 운명에 농락당하는 남자와 이를 조종하는 여자의 각기 다른 시점에서 진행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의 피상적인 이야기가 흐르고 나면, 복기하듯 여자의 무서운 음모가 드러난다. 이 과정이 꽤나 치밀하게 그려져 흥미진진하다. 그만큼 미무니 감독의 탄탄한 대본과 절제된 연출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화장품, 거울과 구두 등 소품을 이용해 등장인물들의 운명을 암시적으로 나타낸 은유적 구성이 훌륭하다. 여기에는 예술적이고 감각적인 ..

제 5 원소 (블루레이)

뤽 베송 감독의 SF영화 '제 5 원소'(The Fifth Element, 1997년)는 눈이 즐거운 영화다. 파격적인 의상을 선보이기로 유명한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를 비롯해 프랑스 만화가 장 클로드 메지에르, 장 메비우스 기로가 작품 제작에 참여해 화려한 영상을 선보인다. 그만큼 화사한 색상과 다양한 볼거리로 눈을 어지럽게 만드는 작품이다. 반면 내용은 영상만 못하다. 전형적인 종말론에 구원론을 결합시킨 일대 활극에 가깝다. 지구를 멸망시키기 위해 시시각각 다가오는 정체 불명의 행성을 외계인의 도움을 받아 물리치는 이야기다. 언뜻 보면 '스타워즈'와 '인디아나 존스'의 모험담이 섞인 듯한 분위기다. 그만큼 영화는 액션과 볼거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무래도 이야기의 구조가 촘촘하지 못하고 엉성하기 ..

니키타 (블루레이)

뤽 베송 감독의 '니키타'(La Femme Nikita, 1990년)는 개봉 당시 참으로 독특한 영화였다. 남자 주인공들이 판을 치는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이 킬러로 등장했고, 신분 또한 살인죄를 저지르고 이를 용서해 주는 댓가로 부채처럼 정부 기관의 암살자로 고용된 일종의 안티 히로인이었다. 당연히 영화의 분위기는 장중하고 무겁고 음울하다. 007처럼 경쾌하고 쿨한 사나이의 할리우드 액션극과 달리 불란서 특유의 느와르성 어둠이 깔린 액션극은 그만큼 비장미가 감돌았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다른 액션물들과 달랐던 점은 액션보다는 인물에 초점을 맞춘 점이다. 니키타가 자신의 존재를 잊고 암살 병기로 육성돼 장기판의 말처럼 조종되면서 느끼게 되는 인간성 상실의 비애가 안느 파릴로드의 우수어린 표정과 반항적인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