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하정우 22

의뢰인

영화의 특수효과를 담당하는 철민(장혁)은 출장을 다녀왔다가 졸지에 아내 살해범으로 몰린다. 그러나 살해당했다는 아내의 시체는 온데간데없고 방 안에 피만 흥건하다. 이때부터 무죄를 주장하는 철민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하정우)와 가장 중요한 증거인 시체가 없는 상태에서 기소를 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된 검사(박희순)의 대결이 시작된다. 손영성 감독의 데뷔작인 '의뢰인'(2011년)은 본격적인 법정 스릴러를 표방하고 나선 작품이다.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법정 공방의 틀을 국내의 국민참여재판에 도입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검사와 변호사의 대결로 압축되는 법정 드라마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상은 밀실 추리극이다. 아무도 침입한 흔적이 없는 아파트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아내의 시체를 놓고 모두가 한판 추리..

아가씨 (블루레이)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2016년)는 그의 작품관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영화다.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 등에서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내용을 선보였던 그는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독특한 소재를 다뤘다. 박 감독은 자신의 작품중에서 대중적인 작품이라고 소개했지만 그의 작품을 많이 보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충격적이고 변태적이며 가학적이다. 흔치 않은 외설적 취미를 가진 조선인과 이를 이용한 사기꾼 무리들의 변태적 행각, 이 과정에 드러나는 여배우들의 적나라한 동성애 장면, 서슴치 않고 손가락을 깍두기 썰 듯 잘라버리는 폭력 장면 등은 여전히 '올드보이'의 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만큼 경우에 따라 보는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의 작품 중 진정 대..

베를린 (블루레이)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2012년)은 새삼 분단국가라는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다. 이념 때문에 갈린 남과 북의 정보요원들이 한반도도 아닌 머나먼 이국땅인 독일 베를린에서 맞부딪치며 목숨을 걸고 싸우는 얘기다. 그런데 왜 하필 베를린을 택했을까. 베를린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절 동백림 사건이라는 역사점 오점을 안고 있는 장소다. 동백림 사건은 박정희 정권 시절이던 1967년 중앙정보부가 독일에서 유학중인 학자나 예술인들이 동베를린(동백림)을 거쳐 북한에 들어가 간첩 교육을 받은 뒤 간첩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잡아들인 사건이다. 당시 중앙정보부 요원들은 베를린까지 가서 작곡가 윤이상 등을 강제로 잡아다 고문하고 사건을 조작해 몇 명에게 사형까지 선고하며 대대적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결국 최종심에..

아가씨

박찬욱 감독의 10번째 영화인 '아가씨'는 그의 이전 작품들과 다르면서 같은 영화다.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복수는 나의 것' 같은 복수 3부작에 비하면 잔혹하지 않으면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라는 점이 다르다. 여기에 기존 작품에서는 볼 수 없던 여인네들의 진한 사랑이 펼쳐진다. 영국의 새러 워터스가 쓴 소설 '핑거 스미스'를 각색한 이 작품은 엄청나게 잘 사는 친일파의 집에 하녀로 들어간 여인과 친일파의 처조카딸, 이를 둘러싼 남자들의 음모와 배신이 또아리를 틀고 돌아가는 얘기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지만 이야기가 결코 복잡하지 않아 흥미진진하게 따라갈 수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야기가 업치락 뒤치락하지만 양자 대결의 분명한 선악구도로 나뉘어 헷갈릴 일이 없다. 감독이 ..

영화 2016.06.11

암살 (블루레이)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의 친일파 암살 작전을 다룬 최동훈 감독의 영화 '암살'(2015년)은 어려서 봤던 만화 '첩보원 36호'를 떠오르게 한다. 초등학교 시절인 1970년대 유명했던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에 연재됐던 이 만화는 백산(본명 최일부)의 작품으로 일본 강점기 시절 임시정부의 첩보공작조 활약을 다뤘다. 영화는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이 의열단을 이끈 약산 김원봉과 손잡고 암살조를 조선 경성에 파견해 친일파 거부와 조선주둔 일본군 사령관을 암살하는 내용이다. 물론 영화는 허구이지만 이 과정에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와 시대상을 적당히 섞었다. 김구, 김원봉 등 실존 인물과 사실들이 그대로 나오기도 하고, 암살조로 나온 여성 암살자(전지현)는 조선총독 사이토와 주 만주국 일본대사 무토 암살을 기도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