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황우슬혜 3

레슬러

김대웅 감독의 '레슬러'(2017년)는 우연히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짧은 동영상이 재미있어서 뒤늦게 찾아보게 됐다. 내용은 아들 성웅(김민재)을 혼자 키우는 아버지 귀보(유해진)가 아들과 갈등을 빚으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뤘다. 귀보의 꿈은 아들 성웅이 레슬링에서 금메달을 따서 레슬러로서 못다 이룬 자신의 꿈을 이뤄주는 것이다. 그런데 성웅이 좋아하는 여자 친구 가영(이성경)이 귀보를 짝사랑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그 바람에 성웅은 아버지 귀보에게 반발하며 비뚫어지는 바람에 부자간에 갈등이 깊어진다. 귀보는 부자지간은 물론이고 가영과 관계도 모두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어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각본을 쓴 김 감독은 기본적으로 부자간 관계에 초점을 맞춘 휴먼 드라마를 지향하면서 자잘한 웃음으로 이야기..

과속스캔들 (블루레이)

강형철 감독의 '과속스캔들'(2008년)은 원래 제목이 '과속 3대'였다. 말 그대로 속도 위반으로 모인 가족 3대의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이야기가 신파나 무거운 주제로 흐르지 않고 쿨한 웃음으로 이어진다. 그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30대 젊은 나이에 할아버지가 된 라디오 DJ 남현수(차태현)와 20대 미혼모인 딸(박보영), 그리고 손자인 기동(왕석현)이 한 집에 모여 사는 설정 자체가 결코 흔하거나 가벼운 소재는 아니다. 이를 깨알같은 에피소드로 엮어 웃음을 터뜨린 강 감독의 연출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여기에는 물론 자연스런 웃음을 유발한 배우들의 연기도 제 몫을 톡톡히 했다. 특히 한물 간 연예인을 연기한 차태현은 연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다. 그만큼 이번 배역은 제 몸에 맞는 ..

미쓰 홍당무

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2008년)를 보면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이 생각난다. 라쇼몽은 재판장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 본 탓에 서로 다른 증언을 하며 혼란이 발생하는 이야기다. 미쓰 홍당무도 마찬가지다. 다소 엉뚱하고 4차원같은 인간 군상들이 자신만의 관점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재단하며 사건은 비틀리고 꼬인다. 특히 막판 방은진이 등장인물들을 어학실에 불러 모아놓고 시시비비를 따지는 장면은 영락없는 라쇼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돋보이는 것은 독특한 캐릭터 때문이다. 안면홍조증을 갖고 있는 여인과 그가 좋아하는 과거 스승이자 지금은 동료인 교사, 왕따 소녀, 백치미 여인 등 캐릭터들이 자기만의 분명한 색깔을 갖고 살아 있다. 특히 등장인물들이 괴로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