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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아길라 - "Anak"

울프팩 2009. 4. 21. 23:19

이 노래만 들으면 가슴에 물이 고인다.
프레디 아길라의 서늘한 목소리에는 가슴을 치는 회한과 안타까움이 가득 들어 있기 때문이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다니던 70년대말 라디오에서 곧잘 흘러나오던 '아낙'이라는 노래는 필리핀의 국민 가수 프레디 아길라의 대표곡이다.
지금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프레디 아길라는 음악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존경할 만한 참으로 훌륭한 가수다.

1953년생인 프레디 아길라는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뜻을 뿌리치고, 18세때 기타 하나 둘러메고 가출을 했다.
무려 5년 동안 필리핀 각지를 떠돌면서 클럽에서 노래도 부르고 도박에 빠져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그때 심정을 담아 '아낙'이라는 곡을 만들었다.
필리핀 따갈로그어로 '자식'(child)이라는 뜻의 아낙은 프레디 아길라 자신의 이야기처럼 부모의 가슴을 아프게 한 자식의 후회가 담긴 노래다.

77년 필리핀 메트로 가요제에 출전해 대상을 받으며 널리 알려진 이 곡은 필리핀 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미국 등 전세계 26개국에 번안돼 수천 만장의 음반이 팔렸고, 빌보드 차트 5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국내에서는 정윤선이라는 예쁜 가수가 '아들아'라는 제목으로 이 노래를 번안해 불렀다.

미국 대형 음반사에서도 매력적으로 생각해 계약을 제의할 만큼 워낙 독특한 음색을 지녔던 그는 이때 마음만 먹었으면 더 큰 성공을 했을 수 있다.
그러나 필리핀 서민들의 삶을 노래하고 싶었던 그는 필리핀에 눌러 앉았다.

그런 그가 필리핀의 국민가수로 부상한 것은 1986년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에 항거해 전국적인 민중봉기가 일어났을 때였다.
그때 아길라는 시위대의 한복판에서 '나의 조국'이라는 뜻의 'Bayan Ko'를 불러 필리핀 국민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이 노래는 지금도 필리핀에서는 제 2의 국가처럼 불린다.

민주화가 찾아온 뒤에도 아길라의 민중을 향한 삶은 계속됐다.
그는 1990년 화재로 갈곳을 잃은 어린이집의 아이들을 자신의 빈민가 허름한 집으로 불러모아 공부를 가르치면서 '아낙 학교'를 시작했다.

아길라는 클럽 등에서 노래를 불러 번 돈으로 책, 학용품, 교복 등을 사주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6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서민들을 위해 노래를 멈추지 않는 아길라는 참으로 존경스런 음악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