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국제시장

울프팩 2015. 1. 15. 10:05

입소문이란 무서운 게다.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은 별로 볼 생각이 없었는데, 좋든 나쁘든 입소문이 돌아 1,000만 관객을 돌파한 11번째 우리 영화가 됐다니 도대체 어떤 영화인 지 궁금했다.

 

아버지 세대의 추억을 그린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 세대 입장에서도 영화의 상당 부분은 공유할 만한 이야기꺼리가 많았다.

저녁 6시면 울려 퍼지는 애국가 소리에 길가던 사람이 얼어붙은 듯 제자리에 못밖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던 기억이나 온 식구가 눈물 콧물 쏟으며 TV 앞에 못박혀 이산가족 찾기 중계를 봤던 기억들은 지금도 생생하다.

 

가끔 말썽을 부릴 때면 부모님이나 할머니는 우리를 불러앉혀 놓고 6.25 때 1.4 후퇴 이야기를 들려주고, 피난 시절 배 곯았던 이야기와 죽을 뻔 했던 일화들을 옛이야기처럼 풀어 놓으셨다.

그때 하도 들어서 그런 지 영화 속 황정민이 분한 달수 가족의 이야기는 그만큼 익숙했다.

 

이야기만 익숙한 게 아니다.

여러가지 웃음이나 눈물코드를 위해 집어 넣은 이야기들 또한 예측 가능해서 큰 웃음이나 눈물샘을 자극하지 못한다.

 

오달수와 독일 여사감의 일화, 황정민과 아내 역할을 한 김윤진의 에피소드, 그리고 황정민과 가족들이 빚어내는 갈등과 고뇌 등 예측 가능한 상투성은 마음을 움직이기에 역부족이었다.

결코 정치논란을 벌일 만큼 대단한 작품도 아니지만 눈물 콧물 뺄 만큼 요란을 떨 영화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저 TV 단막극처럼 그냥 일회성으로 가볍게 보아 넘길 만한 작품이다.

그런 상투성으로 줄줄이 얽힌 에피소드 가운데 유일하게 눈시울이 뜨거웠던 장면은 KBS 자료화면을 집어넣은 이산가족 장면이었다.

 

그것도 황정민의 이야기로 꾸민 드라마 대목이 아니라 순전히 자료 화면이었다.

즉, 억지로 만든 드라마보다 짧게 지나가는 실제 이야기의 울림이 더 컸다.

 

여기에 어색한 노인 분장도 드라마에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다.

아버지 세대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 지를 마치 현대 통사처럼 에피소드 나열로 전달하기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을텐데, 지나치게 이야기의 폭을 넓게 잡은 감이 있다.

 

그리고 비단 영화 속에서 보여준 부분만 아버지 세대들의 역사이자 고난의 삶은 아니었을 텐데, 그런 부분을 도외시한 점도 수긍이 가지 않는다.

윤 감독은 어느 일간지 인터뷰에서 정치 논란을 의도적으로 피하기 위해 우리 현대사의 아프고 굴곡진 부분을 일부러 제외했다고 하는데 그 점 때문에 오히려 우익 영화라는 논란을 부른게 아닌가 싶다.

 

더불어 국제시장이란 제목이 영화 속에서 별다른 힘을 갖지 못하는 점도 패착이다.

감독이 부산을 좋아해서 집어 넣은 명칭이라는 점 외에는 국제시장 만이 갖는 특수성과 특별한 이야기들이 좀 더 묻어 났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렇지 못하다.

 

굳이 제목을 국제시장이 아닌 평화시장이나 동대문시장이라고 붙여도 어색하지 않다.

한마디로 제목이 갖는 상징성이 여러모로 부족했다.

*play 표시가 있는 사진은 PC에서 play 버튼을 누르면 관련 동영상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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