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걸어도 걸어도(블루레이)

울프팩 2019. 3. 20. 17:46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에 얽힌 추억이 하나 있다.

일본의 배우 겸 가수였던 이시다 아유미가 부른 '블루라이트 요코하마'라는 노래다.

 

노랫말 발음대로라면 '부루라이또 요꼬하마'다.

일본 노래가 금지된 1980대 초반 이 노래와 콘도 마사히코의 '긴기라기니'가 국내에서도 엄청 인기였다.

 

일본 노래 자체가 금지된 시절 이 노래들은 서울의 이태원이나 세운상가 등지에서 판매한 '일본 노래 모음'이라는 카세트 테이프에 들어 있었다.

금지곡에 대한 호기심과 친구들을 통해 들어본 멜로디에 반해 이 테이프를 사서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블루라이트 요코하마는 애잔한 엔카풍 노래였는데 멜로디에 반해서 여러번 듣다보니 뜻도 모르며 가사를 따라 부르게 됐다.

영화 속에서 이 노래가 나와 놀랍기도 하고 몹시 반가웠다.

 

극 중 '짠짠짜잔~' 하며 전주가 흘러 나오는 순간 1980년대 까까머리 학창시절이 눈 앞에 스쳐갔다.

작품에서는 고인이 된 배우 키키 키린이 오랫동안 간직해온 싱글 음반(SP)을 슬쩍 꺼내와 아들에게 틀도록 하면서 가장인 남편을 좌불안석이 되게 만든다.

 

영화 속에서 뚜렷하게 밝히지 않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나누는 대사 등으로 유추하건대 남편은 밝히기 곤란한 누구와 요코하마를 다녀온 모양이다.

이를 부인이 눈치채고 오랜 세월 음반을 감춰놓고 속으로 미워한 듯 싶다.

 

이때 부인이 던지는 대사가 압권이다.

"누구나 숨어서 듣는 노래 한 곡쯤 있기 마련..."

 

남편을 자극하는 말이면서 자신의 지나온 세월을 곱씹는 기억일 수 있는 중의적인 표현이다.

이 부분이 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인생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한 줄기 추억같은 것이며, 늘상 되풀이되는 생활의 반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등장인물들이 등을 보이며 걸어내려가는 언덕길이나 공원 숲 길처럼 늘 같은 풍경의 반복, 그것이 곧 삶이요 인생 아니냐는 질문이다.

 

"살아보니 별 거 없더라"는 노인네들의 얘기가 때로는 무심하고 심드렁하게 들리지만 결국 그것이 삶의 진리이자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틱한 사건이 없는 이 영화는 의외로 편안하면서 묵직한 울림을 던진다.

 

마치 블루라이트 요코하마가 누군가의 트라우마이자 누군가의 기억인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 것처럼 편안하면서도 무거운 주제를 어느 가족의 일상으로 풀어낸 영화가 바로 이 작품이다.

내용은 장남의 기일을 맞아 모인 가족들이 나누는 대화가 전부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족들 모두 각각의 상처를 안고 있다.

시골 마을 의사인 아버지는 위급 환자가 발생했는데도 자신있게 나서지 못하고, 어머니는 은연중 재혼한 며느리에게 처지를 환기시키는 말을 자꾸 한다.

 

작은 아들은 결코 죽은 장남을 대신할 수 없다는 자괴감을 갖고 있으며 딸은 어머니와 거리감을 재삼 확인하게 된다.

이런 각각의 처지가 퍼즐 조각처럼 모여서 전체의 이야기를 이루는데, 희한하게도 그 안에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살면서 이런 저런 이유로 가족 구성원 누군가와 갈등을 빚어본 적이 한 번쯤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소박한 가족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그것이 이 영화의 힘이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1080p 풀 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평범하다.

 

일본 영화 특유의 뿌연 느낌과 입자감이 두드러지며 디테일도 좋지 않다.

음향은 DTS HD MA 2.0 채널을 지원한다.

 

부록으로 이동진 평론가와 윤가은 감독의 해설, 제작과정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 작품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각본을 쓰고 편집까지 했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뒷모습이 자주 나온다. 더러 인물은 보이지 않고 프레임 밖에서 대사가 들리기도 한다. 흔치 않은 작법이다.

키다리 배우 아베 히로시가 차남으로 등장.

완고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 앵글을 잡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성을 내며 돌아선다.

차남의 아내를 연기한 나츠카와 유이. 19세때 모델로 데뷔해 '논노'에서 주로 활동. '게드 전기'에 목소리 연기를 했고 '자토이치'에도 출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촬영하기 2년전인 2005년 사망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감독이 쓴 같은 제목의 소설도 국내 출간됐다.

일본 국민 배우인 키키 키린은 2018년 9월 15일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75세. 2004년 유방암이 발병에 전신에 퍼지면서 10년 넘게 투병했다.

1968년에 이시다 아유미가 발표한 노래 '블루라이트 요코하마'는 싱글이 100만장 이상 팔리며 크게 히트했다. '아루이떼모~ 아루이떼모~'라는 가사에서 영화 제목을 따왔다.

이 작품은 실내 장면에서 인공 조명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명암대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인생이란 걸어도 걸어도 끝나지 않는 여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걸어도 걸어도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걸어도 걸어도 (풀슬립 넘버링 한정판) : 블루레이
예스24 | 애드온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