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2019/11 9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블루레이)

에단과 조엘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 2007년)를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 섬뜩한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단발머리의 무표정한 얼굴의 사내가 들고 다니는 공기탱크는 역대 최강의 무기였다. 소리도 없고 불꽃도 없으면서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문짝의 열쇠 틀이 통째로 뽑혀 날아갈 만큼 무시무시한 파워를 과시했다. 이를 사람의 머리에 대고 버튼을 누르면 순식간에 죽는 줄도 모르고 쓰러진다. 어떻게 저런 무기를 생각했을까, 절로 감탄하며 봤는데 알고 보니 거대한 소를 도살할 때 쓰는 도구를 개조한 무기였다. 살인자를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의 무표정한 얼굴 또한 공포 그 자체였다.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에 낮게 깔리는 목소리, 여기에 우스꽝스러운 단발머리까지 ..

007 스카이폴 (4K 블루레이)

"취미가 뭔가?" "부활이지." 악당과 007이 영화 속에서 나누는 이 대사가 이번 작품의 테마다. 샘 멘데스 감독이 007 영화 탄생 50주년을 맞아 23번째 시리즈물로 내놓은 '007 스카이폴'(Skyfall, 2012년)은 악당이 파괴한 첩보조직과 제임스 본드의 부활을 다루고 있다. 부활은 소멸을 전제로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제임스 본드를 빼고는 모든 캐릭터가 새로 태어났다.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출발을 예고하듯 007만 빼고 더 젊어지고 강건해 졌다. 오랜 세월 책상 앞에만 앉아 있던 나이 지긋한 여성 머니페니는 총질을 마다 않는 검은 피부의 섹시한 젊은 여인으로 거듭났고, 데스몬드 르웰린이 타계할 때까지 연기한 늙은 과학자 Q는 컴퓨터를 귀신같이 다루는 젊은이가 됐다. 압권은 007이..

007 퀀텀 오브 솔러스(4K 블루레이)

007 시리즈 22번째 작품인 '퀀텀 오브 솔러스'(Quantum of Solace, 2008년)는 전작인 '카지노 로얄'에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전작에서 죽은 애인 베스퍼의 복수를 위해 좌충우돌하는 007의 모험담을 다루고 있다. 그만큼 전작을 알면 이해하기 쉽겠지만, 보지 않았어도 줄거리를 따라가는데 무리는 없다. 이 작품 역시 이국적인 풍경, 아름다운 여인, 요란한 액션 등 007 특유의 상징들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전작에서 성공한 007로 자리매김한 다니엘 크레이그는 이번에도 육감적인 액션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전작 만큼의 신선한 충격은 없다. 아무래도 마크 포스터 감독이 액션보다는 드라마에 강한 측면이 있기 때문. 육상, 해상, 공중을 오가며 벌이는 추격전이 긴장감 넘치지만 스파이의 고뇌..

돌이킬 수 없는(블루레이)

가스파 노에 감독의 '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 2002년)은 쉽게 보기 힘든 충격적인 영화다. 이 작품은 여러모로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우선 내용이 아주 폭력적이고 거칠다. 지하보도에서 무차별 강간당한 뒤 폭행까지 당한 여자 친구(모니카 벨루치)의 복수를 위해 범인을 찾아 나선 남자(뱅상 카셀)의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강렬한 장면들이 마구 나온다. 붉은색 지하보도에서 벌어지는 9분가량의 강간과 폭력 장면은 여인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해서 절로 몸서리 쳐진다. 여인의 복수를 위해 남자가 찾아간 곳은 하필 남성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게이 술집이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폭력 장면 또한 처참하다. 남자는 팔이 꺾이고, 엉뚱하게 나선 다른 남성은 소화기로 맞아 ..

스콜피온 킹(4K 블루레이)

척 러셀 감독의 '스콜피온 킹'(The Scorpion King, 2002년)은 '미이라' 시리즈의 스핀 오프 같은 영화다. '미이라 2'에서 드웨인 존슨이 연기한 악역 스콜피온 킹이 강한 인상을 주면서 인기를 얻자 아예 이 부분을 따로 떼어내서 '미이라 2'의 프리퀄처럼 만든 작품이다. 내용은 세상을 정복하려는 통치자에 맞서 한 명의 전사가 사람들을 구하는 내용이다. 그 전사가 바로 스콜피온 킹인 드웨인 존슨이다. 이집트 신화의 고대 예언자와 소돔과 고모라 같은 성경 속 도시 이야기를 적당히 섞고 '코난'류의 고대 전사를 버무려 비빔밥처럼 구성했다. 전형적인 할리우드의 히어로물 액션 무비로, 프로레슬링으로 인기를 끈 드웨인 존슨의 인기에 전적으로 기댔다. 줄거리가 익히 예상되는 뻔한 내용이지만 드웨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