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171

명량

이순신 장군을 다룬 영화의 최대 난관은 바로 이순신을 그리는 것이다. 1970년대 국민학교 교과서에 무과 시험 중 낙마했으나 버들가지로 다리를 동여매고 시험을 치른 장군의 일화가 등장할 만큼 익숙한 존재인지라, 피상적으로라도 장군을 아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군에 얽힌 연대기적 이야기들은 동어반복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그 이면에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인간 이순신을 그려야 하는 것이 난제인데, '난중일기'를 제외하고 그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사료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최단 기간 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김한민 감독의 '명량'(2014년)도 마찬가지 한계를 안고 있다. 1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해전 장면은 볼 만 하나 이순신의 모습이 피상적으로 ..

영화 2014.08.15

군도

1960년대 국내에 만주 웨스턴이라는 장르가 유행했다. 당시 인기있던 서부극의 배경을 1930년대 무법천지 일제하의 만주로 바꿔서 우리 식으로 재해석한 서부극이다. 윤종빈 감독의 '군도'는 서부극에 가까운 서사적 구조를 갖고 있다. 서부극 중에서도 스파게티 웨스턴에 가깝다. 정통 미국식 서부극이 보안관에 의한 법 집행, 즉 공권력의 정당성 만을 정의로 본 반면에 이탈리아 감독들이 만든 스파게티 웨스턴은 서부극의 공간을 무주공산의 권력 공백으로 봤다. 즉, 공권력도 악당이 될 수 있고 악당도 정의가 될 수 있는 아노미 상태에서 쓰러져가는 약자들에 초점을 맞췄다. 즉, 약자를 괴롭히면 공권력도 악당이고, 그들을 위해 총을 뽑으면 악당도 영웅이 된다는 시각이 바로 스파게티 웨스턴과 미국식 정통 서부극의 차이다..

영화 2014.07.27

겨울왕국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Frozen, 2013년)의 흥행 기세가 무섭다. 지난달 16일 국내 개봉한 이 작품은 21일 현재 934만명이 관람해, 국내 개봉한 역대 애니메이션 중 '쿵푸팬더2'(2011년)가 세운 506만명 기록을 일찌감치 갈아 치웠다.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아이언맨3'의 900만명 기록도 뛰어넘으며 역대 외국영화 순위에서도 '아바타'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이런 기세면 1,000만명을 뛰어넘을 지도 모르겠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성적이 괜찮아 2월16일까지 총 9억5,574만달러를 벌어들여, 역대 애니메이션 1위인 '토이스토리3'의 10억6,320만달러 기록을 바짝 뒤쫓고 있다. 덕분에 이 작품은 지금까지 디즈니 작품 가운데 최대 흥행작인 '라푼젤'(2억달러)를 가볍게 ..

영화 2014.02.22

용의자

가끔 보면 본말이 전도된 영화가 있다. 스토리, 연기 등 기본기에 충실해야 하는데 요란한 컴퓨터그래픽이나 눈요기꺼리를 부각해 부족한 기본기를 가리는 식이다. 원신연 감독의 '용의자'(2013년)가 그런 영화다. 이 영화의 액션은 아주 화려하다. 러시아의 시스테마 무술을 이용한 북한 특수부대원과 이를 추격하는 정보기관 요원들의 싸움은 물론이고 자동차 추격전에 총격전까지, 한국에서 일어나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할리우드 액션이 쏟아진다. 특히 계단으로 이뤄진 언덕길을 뒤로 달려내려오는 자동차 추격전은 보는 이를 아찔하게 만든다. 어느 순간 차가 허공에서 한바퀴 공중제비를 돌아 떨어지는 장면은 어떻게 찍었을까 싶을 정도로 대단하다. 하지만 정신없이 액션을 몰아치는 것은 좋은데,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영화 2013.12.28

변호인

대통령 노무현. 언론과 그다지 관계가 좋았던 대통령은 아니었다. 취임하자마자 각 부처별 기자실을 없애버렸고, 구독하던 신문들도 부수를 줄여버렸다. 기자실에 모인 일부 기자들이 작당을 해서 여론을 왜곡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언론은 출발부터 그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고, 집권 기간 내내 불편한 동거가 이어졌다. 정치적으로도 잘한 일도 많았지만 못한 일도 많았다. 2009년 5월29일. 한창 공사중인 광화문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창 앞에 섰다. (http://wolfpack.tistory.com/entry/노무현의-마지막-모습들) 잠시 후, 네 귀를 펼쳐 든 태극기를 앞세운 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과 운구가 천천히 앞을 지나갔다. 여러가지 복잡한 심경에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

영화 201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