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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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르 아즈나부르 'Isabelle'

1980년,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영화잡지를 뒤적이다가 프랑스 가수 샤를르 아즈나부르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가 1965년 발표한 '이자벨'이라는 노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살했다는 루머 비슷한 얘기였는데, 그 바람에 국내에서도 금지곡이 됐다는 글이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궁금증을 참지 못해 동네 음반점으로 달려갔다. 당시 음반점들은 돈 받고 LP에 들어있는 노래들을 이것저것 테이프에 복사해 줬다. '이자벨'을 찾았더니 주인아저씨는 백판을 한 장 들고 와 녹음해줬다. 금지곡이니 백판 외에 들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노래일까, 기대 반 호기심반으로 녹음기의 재생 버튼을 누르고 노래를 들었다. 약 3분여 노래가 끝나고 나서 한참 동안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안 ..

인어공주

박흥식 감독의 '인어공주'(2004년)는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개봉한 작품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너무 큰 기대를 걸어서 그런지 흡족하지 않았다. 판타지에 의존한 사랑과 부정이 그다지 가슴에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느낌이 달라진 것은 DVD 타이틀을 보면서였다. 다음 달에 미리 나올 DVD를 곱씹어 보며 아련한 감정이 서서히 차올랐다. 극장에서 미처 보지 못한 덧정 속에 숨은 진정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직도 판타지에 의존한 박 감독의 이야기 진행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가 만든 아련한 느낌의 그림만큼은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HD텔레시네를 했다는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의 DVD 타이틀은 우리 영화치고 뛰어난 화질을 갖췄다. 원본 필름의 손상 때문에 생긴 잡티와 스크래치..

레이디 킬러

에단(Ethan)과 조엘 코엔(Joel Coen) 형제의 영화는 대부분 그렇듯, 웃음이 터지는 상황에서도 마음 놓고 웃을 수 없는 황당함과 안타까움이 있다. '레이디 킬러'(LadyKillers, 2004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어쭙잖게 모인 5명의 사나이가 뜻밖의 상황 때문에 차례로 사라지는 이야기는 어이없으면서도 웃음이 나온다. 죽는 게 장난이냐는 항변이 터져 나올 법도 한데, 코엔 형제의 비틀기식 이야기에 익숙해 그런 지 그러려니 하게 된다. 모처럼 유쾌하게 본 작품이다. 10월 1일 국내 출시될 DVD 타이틀을 미리 보았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영상은 아주 뛰어난 화질을 갖췄다. 황색 톤의 색감도 잘 살렸고 세부 묘사 또한 섬세하다. 돌비 디지털 5.1 채널을 지원..

킬 빌2

'빌을 죽여라'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의 '킬 빌 2'(Kill Bill vol.2, 2004년)는 전편과 달리 서부극 이미지가 강하다. 주인공과 악당들이 일본도와 중국 무술을 휘두르며 설치지만 엔리오 모리코네의 서부극 음악과 황량한 벌판이 펼쳐지는 풍경은 영락없는 마카로니 웨스턴이다. 주인공 브라이드(우마 서먼 Uma Thurman)는 자신의 결혼식을 장례식장으로 만든 빌(데이비드 캐러딘 David Carradine)과 그 일당에게 복수하기 위해 혼신을 다해 노력하다. 그 노력, 즉 복수는 처절하고 결과는 허무하다. 2편은 1편의 사족 같은 느낌이 강하다. 1편만큼 쇼킹하고 치기 어린 액션도 없고, 이야기가 늘어진다. 차라리 1편의 시간을 조금 더 길게 늘리더라도 한 편..

복수는 나의 것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2002년)은 하드 보일드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영화다. 하드 보일드라는 말은 작가 더쉴 해미트의 추리 소설 이후 오랜만이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본 사람들은 이 작품을 보고 많이 놀랐겠지만, 류승완 감독 말마따나 박찬욱의 본령이 바로 이 작품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올드보이'를 봐도 그렇고, 그는 잔혹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재주가 있다. 장기 밀매단에게 사기를 당한 청년(신하균)과 그에게 아이를 유괴당한 아버지(송강호), 아이 아버지에게 고문을 당하고 죽은 여자(배두나) 패거리의 3가지 복수가 맞물린 이 작품은 공포영화처럼 참혹하고 잔인하다. 복수에 불타는 사람들이 피구덩이 속에서 차례로 죽어가는 모습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을 연상케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