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정(블루레이)

1980, 90년대 무수하게 쏟아져 나온 홍콩 누아르는 감독에 따라 작품이 천차만별로 갈린다.

서극이나 오우삼 같은 감독들은 자기 개성을 살리며 스타일리시한 작품들을 만들었고, 왕가위 감독은 결이 다른 홍콩의 우수 어린 정서를 반영했다.

 

나머지 감독들 중에는 서극이나 오우삼의 영향을 받아 흥행을 노리고 흉내를 낸 사람들이 많다.

그나마 흉내를 잘 내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하면 아주 보기에 곤혹스러운 작품이 돼버린다.

 

1980년대 '영웅본색'이후 숱하게 쏟아져 나온 온갖 영웅 시리즈들이 대부분 그런 작품들이다.

당시 이런 작품들의 제목에 속아 비디오 가게에서 돈과 시간을 날린 씁쓸한 기억이 있다.

 

황태래 감독의 '강호정'(江湖精: Rich And Famous, 1987년)도 그런 허접한 작품 중 하나다.

1950년대 홍콩으로 흘러드는 중국 사람들 이야기로 뭔가 있는 것처럼 그럴듯하게 시작한 이야기는 이후 깡패들의 그저 그런 패싸움으로 용두사미처럼 끝난다.

 

이 과정에서 할 것 없는 두 형제가 암흑가 보스 밑으로 흘러 들어갔다가 서로 다른 길을 걷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한 사람은 죽음을 불사할 만큼 의리를 지키고 한 사람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의리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친다.

 

의리와 복수, 피를 나눈 우정은 영웅본색이 홍콩 누아르에 심어 놓은 변치 않는 DNA다.

이 작품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단선적이고 말초적인 줄거리 속에서 허우적 거린다.

 

액션이라도 그럴듯하게 만들면 킬링 타임 역할이라도 할 텐데, 액션도 투박하고 허접하기 그지없다.

등장하는 배우들을 보면 주윤발, 유덕화, 만자량, 알란 탐, 이수현, 유가령, 왕소봉, 성규안 등 홍콩 누아르에 단골로 나오는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다.

 

국가대표급 배우들을 데리고 이 정도 망작을 만들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이 작품이 쫄딱 망한 것은 전적으로 감독의 역량 부족이다.

 

황당하게도 이 작품은 '강호정 2 영웅호한'이라는 후속작까지 등장했다.

홍콩 누아르를 고를 때에는 배우가 아닌 감독을 봐야 한다는 점을 새삼 일깨운 작품이다.

 

1080p 1.78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괜찮다.

지글거림이 보이지만 잡티나 필름 손상 흔적이 전혀 없이 매끈하다.

 

색감도 생생한 편.

돌비 트루 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음량이 좀 과한 편.

 

특별히 채널 분리가 잘된 편은 아니고 사방 채널을 같은 소리로 채웠다.

부록은 달랑 예고편 하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만자량이 유덕화와 형제로 나온다. '열혈남아'에서 악당 토니로 나온 배우다.

칼 든 배우와 함께 악당으로 나온 배우 역시 '열혈남아'에 잠깐 등장한다. 막판 수갑을 찬 채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끌려가던 인물이다.

유덕화의 앳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인물들의 뒤뚱거리는 액션 또한 투박하기 그지없다. 한마디로 급 떨어지는 홍콩 누아르다.

'첩혈쌍웅'처럼 머리를 올백으로 빗어 넘긴채 긴 바바리에 총 두 자루를 양 손에 쥔 주윤발은 이 작품에서도 특유의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이수현이 경찰로 등장. 그와 주윤발은 공교롭게 '첩혈쌍웅'처럼 형사와 범죄자로 나온다.

이 작품의 속편인 '영웅호한'은 속편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개봉했다. 속편은 전편을 모르고 봐도 상관없게 구성돼 있기는 하다.

'첩혈쌍웅'에서 집요하게 주윤발을 추격하던 악당으로 등장하는 성규안이 이 작품에서는 주윤발의 충성스러운 부하로 나온다. 그는 2009년 코 속의 비인두에 발병하는 비인강암으로 사망했다.

이 작품에서는 다른 배우에 눌려 주목을 받지 못한 유덕화가 같은 해 나온 왕가위의 '열혈남아'로 우뚝 섰다.

가수로도 인기를 끈 알란 탐도 출연.

양조위 부인인 유가령이 주윤발의 연인으로 등장. 양조위와 19년간 연애한 유가령은 1990년 삼합회에 납치돼 성폭행을 당했다. 그때문에 양조위를 멀리했으나 오히려 양조위가 열심히 찾아가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줘서 2008년 부탄에서 결혼했다. 나중에 납치 당시 강제로 찍은 유가령의 나체 사진이 공개됐으나 양조위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절대 사랑이 변치 않는다"고 밝혔다. 재미있는 점은 양조위와 염문설이 돌았던 장만옥은 유가령의 반대로 양조위의 결혼식에 초청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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