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걸 온 더 브릿지

울프팩 2005. 1. 25. 00:07

파트리스 르콩트(Patrice Leconte) 감독의 '걸 온 더 브릿지'(The Girl On The Bridge, 1999년)를 잊지 못하는 까닭은 음악 때문이다.
이 작품을 처음 극장에서 봤을 때 강렬한 흑백 영상과 함께 두고두고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슬픔을 꾹꾹 눌러 담은 듯한 한 곡의 노래였다.

남자(다니엘 오테유 Daniel Auteuil)가 여자(바네사 파라디 Vanessa Paradis)를 향해 칼을 던질 때마다 느릿느릿 끊어질 듯 흘러나오던 노래는 마리안느 페이스풀의 'Who Will Take My Dreams Away'였다.
삶의 극한까지 몰려 자살을 꿈꾸다 과녁으로 나선 여자와 생존을 위해 불안과 긴장 속에 칼을 던지는 남자의 운명을 암시하는 듯한 노래는 영상과 잘 어우러져 묘한 슬픔을 준다.

그 느낌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영화를 보고 나온 뒤 OST를 찾았으나 애석하게도 이 작품은 OST 음반이 없다.
그래서 DVD 타이틀을 구입했다.

2.3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한마디로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다.'
윤곽선에 나타나는 계단 현상과 지글거림은 물론이고 언더스캔까지 버젓이 드러날 정도로 화질이 형편없다.

DVD플레이어나 디스플레이 기기에서 자동 오버스캔을 잡아주거나 이를 설정할 수 있는 기기라면 화질을 조금 희생하더라도(더 나빠질 것도 없다) 오버스캔 세팅을 하고 보는 게 좋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돌비디지털 5.1 음향.

서라운드 효과는 거의 없으나 마리안느 페이스풀의 노래를 묵직하게 전해준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삶의 희망을 잃고 자살을 꿈꾸던 여주인공은 모델 겸 가수 바네사 파라디가 맡았다. 옆의 초록색 기둥은 DVD제작사에서 언더스캔값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칼을 던지는 사나이는 '제8요일'에 나왔던 다니엘 오테유가 맡았다.
커튼으로 가린 여인의 윤곽을 따라 차례대로 꽂히는 칼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장면의 긴장감이 어지간한 스릴러 영화는 따라오지 못할 만큼 압권이다. 마리안느 페이스풀의 노래와 함께 둔탁하게 울리는 칼 꽂히는 소리가 절로 손을 그러쥐게 만든다.
이 작품의 구도는 언제나 삐딱하다. 다리와 지평선, 수평선도 모두 비스듬히 기울어 흐른다. 그래서 주인공들의 기약할 수 없는 미래처럼 불안감을 준다.
이 작품의 최고 하이라이트. 널판 사이로 스며드는 역광을 뒤로 한채 기대선 여인을 향해 칼을 던지는 장면은 마리안느 페이스풀의 노래가 제대로 어우러져 슬픔과 아름다움, 묘한 관능미를 선사한다. 널판 틈새로 잘게 쪼개 흘려보낸 역광은 각종 CF에서 흉내 냈다.
칼 끝에 팽팽한 긴장감이 실려있다.
사랑과 공포는 하나로 통한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관능미가 묻어나는 장면.
이 영화에서 칭찬하고 싶은 것은 장 마리 드레주 촬영감독의 영상이다. 그의 카메라는 때로는 눕고, 때로는 흐르고, 때로는 360도로 빙빙 돌며 관객을 칼 끝 위에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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