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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경비구역 JSA(블루레이)

울프팩 2022. 3. 13. 15:29

1998년 2월, 김훈 중위 사건이 일어났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인 JSA의 벙커에서 경비소대장을 맡고 있던 육사 52기 김훈 중위가 죽은 채 발견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뜻하지 않은 이유로 꽤 관심을 끌었다.

당시 출입처 중 하나였던 현대그룹의 시스템 통합(SI) 업체인 현대정보기술의 김척 사장이 김훈 중위의 아버지였다.

 

김 사장은 육사 21기로 제1군단장을 지낸 예비역 육군 중장 출신이었다.

당시 SI업체들은 워낙 관급 공사를 많이 맡았던지라 군 출신들이 많이 포진해 있었다.

 

군에서는 김 중위가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발표했으나 아버지가 타살을 주장하며 강력 반발해 지금까지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은 의문사로 남았다.

아버지가 타살을 주장한 이유는 TV 방송에도 많이 보도됐지만 몇 가지 의혹 때문이었다.

 

현장에 떨어진 베레타 M9 권총이 그의 것이 아니었고 오른손잡이인 김 중위 오른손에서 화약흔이 나오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총알이 머리를 뚫고 지나간 방향이 자살하는 사람이 취하기 힘든 자세를 가리켰다.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지만 아버지인 김 사장은 군 장성 출신인 자신도 이렇게 억울하게 당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군에서 얼마나 억울한 일을 당하겠냐며 개탄했다.

김 사장은 출입기자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억울한 사연을 호소했지만 사실을 밝히기에 역부족이었다.

 

당시 개연성 있게 제기된 주장은 신참 소대장으로 JSA에 부임한 김 중위가 북한군과 어울리는 병사들을 발견하고 이를 문제 삼으려다가 부하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당시 부소대장이었던 김영훈 중사는 30회 이상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군 초소에 찾아간 사실이 나중에 발견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았다.

 

판문점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사실이었다.

김훈 중위 사건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1997년 박상연이 쓴 소설 'DMZ'였다.

 

박 작가는 JSA 출신에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국군과 북한군이 판문점에서 남몰래 어울리는 내용의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을 토대로 박찬욱 감독이 만든 영화가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다.

 

영화는 우연한 기회에 조우하게 된 국군과 북한군이 어울리면서 인간적인 정을 쌓는 이야기를 다뤘다.

이 과정에 돌연 총격전이 발생하고 북한군이 사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의 진상을 캐기 위해 중립국인 스위스군 여군 장교 소피(이영애)가 파견돼 사건 당사자인 국군의 이수혁(이병헌) 병장과 북한군 오경필(송강호) 중사를 조사하면서 뜻밖의 진실을 알게 된다.

추리 소설처럼 사건의 맥락을 역추적하는 식으로 구성된 영화는 적당한 웃음을 유발하면서 긴장을 잃지 않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 '라쇼몽'처럼 등장인물의 관점에 따라 다른 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통해 관객에게 사건을 함께 풀어가는 재미를 준다.

여기에 판문점을 공들여 재현한 세트와 고증을 거친 사실적인 소품까지 시각적으로도 완성도를 높였다.

 

덕분에 이 영화는 당시로서는 대성공인 589만 명의 관객 기록을 세웠다.

무엇보다 이 작품 이전까지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한 박 감독이 흥행 감독으로 주목을 받으며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 히트작들을 줄줄이 내놓는 발판이 됐다.

 

일부 설정이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그때까지 한 번도 영화에서 진지하게 다루지 않은 남북한의 동질성에 초점을 맞춘 의미 있는 작품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북한군을 인간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국민 정서상 한계가 있었다.

 

제작진도 잡혀 가는 게 아닌가 노심초사했다고 하니 분위기를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실제로 JSA 전우회 등 일부 극우보수단체들은 제작사인 명필름에 항의 방문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제작진들의 용기 있는 시도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울러 훌륭한 배우들을 기용해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든 박 감독의 뛰어난 연출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그저 그렇다.

지글거림이 두드러지고 야간 장면과 중경, 원경의 디테일이 떨어진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리어 채널에서 배경 음악이 흘러나오는 등 간헐적인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부록으로 감독과 김영진 평론가의 해설, 배우와 제작진의 해설 등 2가지 음성해설과 YTN의 제작 다큐멘터리, 제작현장, 배우 인터뷰, 세트 공개, 뮤직비디오 등이 들어 있다.

 

참고로 설정 메뉴에 오류가 있다.

감독과 배우 해설로 돼 있는 메뉴는 실제로 감독과 김영진 평론가의 해설이 들어 있고, 두 번째 감독과 제작진 해설로 표시된 메뉴는 배우들과 제작진의 해설이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메뉴들>

이영애가 혼혈의 스위스군 장교로 등장해 영어 대사 연기를 한다.
박 감독의 친구인 조영욱 음악감독이 음악을 맡았다. '이등병의 편지' '부치치 않은 편지' 등 김광석 노래와 한대수의 '하룻밤' 등이 삽입됐다.
제작진은 양수리종합촬영소에 판문점 세트를 만들어 촬영했다. 판문각 간판은 실제로 조각했다.
국군의 야간수색장면은 충남 서천의 금강 하구 갈대밭에서 촬영.
박 감독은 수색 도중 양쪽 군대가 조우하게 되는 과정을 JSA 출신에게서 듣고 영화에 활용했다.
JSA 병사들은 국군 제식 병기와 다른 미군 장비를 사용한다.
감독은 이 영화를 전쟁 공포를 다룬 작품으로 생각한다. 제작진은 원래 스위스 여군복이 예쁘지 않아 항아리 형태의 치마를 좁게 바꾸고 엉덩이 아래까지 늘어진 재킷도 짧게 줄였다.
박 감독에 따르면 이병헌이 최민수 흉내를 많이 내면서 최민수 톤으로 '가야지'라는 대사를 하는 바람에 그 대사만 나중에 따로 후시 녹음해 입혔다.
제작진은 원작 소설에서 남성이었던 조사관을 여성으로 바꿨다. 배타적 시선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박 감독은 한국전쟁에서 시작된 비극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여주고 최인훈의 소설 '광장' 속 인물들과 연결시키기 위해 거제포로수용소의 기록 영상 등을 넣었다.
촬영 당시 영남대 인공기 사건이 발생했다. 영남대 건물을 빌려 대형 인공기를 걸고 김일성 교시를 내걸었다가 주민들의 항의와 신고가 빗발쳐 결국 해당 장면의 촬영을 포기했다.
제작사는 처음에 액션 장면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김광석의 노래 '부치지 않은 편지' 사용을 반대했다. 그러나 대안이 없어 그대로 썼는데 역설적이게도 더 슬프게 들렸다.
유명한 막판 장면은 배우들의 스틸 사진을 각각 따로 찍은 뒤 컴퓨터 그래픽으로 한 화면에 합성했다. 서로 다른 위치에 서있는 4명의 배우에게 일일이 포커스를 정확하게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