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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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4K)

울프팩 2022. 10. 11. 00:23

'날씨의 아이' '언어의 정원' '초속 5센티미터' 등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新海誠)의 작품들을 보면 사진 같은 섬세한 배경에 손그림의 정감이 섞여 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수채화 같은 작품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들인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들에서도 이런 특징들이 두드러진다.

 

다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으로 대표되는 지브리 작품들이 철저하게 손그림에 의존한다면 신카이 감독은 적절하게 컴퓨터 그래픽을 손그림과 섞어서 사용한다.

덕분에 실사처럼 세밀한 풍경 위에 손그림의 부드러운 채색이 더해져 정겨움과 함께 감정을 자극한다.

 

이런 특징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서는 보기 힘든 저패니메이션의 특징이기도 하다.

신카이 감독의 작품 '너의 이름은'(君の名は。2016년)도 마찬가지다.

 

도쿄의 신주쿠 역 앞 장면 등 사진을 찍은 것처럼 세밀한 도시 풍경은 압권이다.

반면 이토모리 마을과 이토모리 호수를 그린 풍경은 부드럽게 색이 번지는 수채화처럼 서정적이다.

 

여기에 신카이 감독은 빛과 그림자를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안다.

도시의 네온사인과 조명의 변화, 호수 위로 석양이 지며 빛이 물 위에 반사돼 퍼지는 윤슬 장면을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올 만큼 경이롭다.

 

실내 장면도 마찬가지다.

여고생 미츠하가 깨어나는 아침 장면을 보면 창 밖에서 사선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맞은편 방문 쪽으로 길게 음영이 드리우며 입체감과 공간감을 강조했다.

 

이처럼 신카이 감독은 한 장면 안에서 빛과 그림자가 조화를 이루도록 적절하게 배치해 공간의 깊이감을 살릴 줄 안다.

한마디로 신카이 감독에게 빛과 그림자는 그 자체로 훌륭한 미장센이다.

 

이 작품은 이야기를 떠나 신카이 감독의 그림 만으로도 눈이 즐거운 애니메이션이다.

이야기는 서로 다른 시간의 교차, 즉 타임 슬립을 다룬 공상과학(SF)이면서 남녀의 몸이 바뀌는 판타지다.

 

산골 마을인 이토모리에 사는 여고생 미츠하(카미시라이시 모네)와 도쿄에 사는 미래의 남학생 타키(카미키 류노스케)는 어느 날 갑자기 서로의 몸이 바뀌어 과거와 미래를 사는 기이한 경험을 한다.

두 남녀는 지구로 떨어지는 혜성 때문에 사라질 위기에 놓인 이토모리 마을을 구하기 위해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모험을 벌인다.

 

이 와중에 두 사람은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해야 하는 긴장된 사건 속에서 결코 이루어지기 힘든 안타까운 사랑을 한다.

여기에는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 소설 '사양'(斜陽)에 나오는 인연의 붉은 끈도 등장한다.

 

사람이 태어날 때 달고 나오는 붉은 끈을 따라가면 평생 만나야 할 사람들이 연결돼 있다는 설정이 영화 속에서는 미츠화와 타키의 매듭으로 묘사됐다.

비록 황당한 이야기이지만 시공간을 넘나드는 남녀의 애틋한 사랑을 시시각각 다가오는 재앙과 결부시켜 풀어가는 점이 돋보인다.

 

모든 것을 떠나 신카이 감독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서정적인 그림이 빛을 발한 작품이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의 허점을 아름다운 그림이 모두 덮어 버렸다.

 

국내 출시된 4K 타이틀은 4K와 일반 블루레이 등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예전 국내 출시된 일반 블루레이의 경우 본편과 부록 등 2장으로 구성됐는데 이 가운데 부록 디스크에 수록된 내용을 블루레이 한 장에 모두 수록해서 내용물이 똑같다.

 

원래 부록 디스크에 들어 있던 부록들이 내용이 많지 않아 충분히 한 장에 들어간다.

2160p UHD의 1.78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은 화질이 아주 좋다.

 

예리한 샤프니스와 선명한 색상 덕분에 물로 씻은 듯 말끔한 화질을 자랑한다.

단풍숲의 세세한 단풍잎 묘사와 매듭의 실 하나하나까지 올올이 살아 있는 장면을 보면 디테일 또한 뛰어나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아주 훌륭하다.

소리의 이동성과 방향감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참고로 일본어뿐 아니라 우리말 녹음도 DTS HD MA 5.1 채널로 들어 있다.

부록으로 감독의 자품 소개 영상, 감독의 한국 개봉 인사, 스페셜 프로그램과 감독 인터뷰, 부산 국제영화제 기자회견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부록들도 HD 영상으로 제작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들에서 작화 감독을 맡은 안도 마사시가 이 작품의 작화 감독으로 참여.
창으로 스며든 빛과 방문쪽 그림자가 적절히 조화를 이뤄 공간의 깊이감과 입체감을 살렸다.
감독에 따르면 원제 끝에 붙은 구두점이 중요하다. 감독은 구두점을 의문과 단정 등 관객에게 여러가지 상상을 자극하는 장치로 봤다.
사진 같은 신주쿠 역 앞 풍경. 신카이 감독은 실제 존재하는 공간을 주로 그린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1,500만 명이 관람했다.
여고생 미츠하 목소리는 카미시라이시 모네가 맡았다.
신카이 감독은 음악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 작품에서는 감독이 좋아하는 일본 밴드 래드윔프스가 음악을 맡아 22곡을 녹음했다.
신카이 감독은 래드윔프스의 노래를 듣고 원래 남녀 주인공이 스마트폰에 문자를 남기는 설정을 서로의 손에 글씨를 쓰는 장면으로 바꿨다. 노래의 정서가 스마트폰이 아닌 손글씨와 맞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운석이 떨어진 이토모리 호수 풍경은 나가노의 스와 호수를 배경으로 그렸다.
신카이 감독은 일본의 유명한 미인 오노노 고마치가 쓴 일본 고전시 '와카'에서 영감을 얻었다. 와카는 사랑을 담은 짧은 시다. 신카이 감독은 꿈 속에서 만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 꿈에서 깬 것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의 시를 읽었다.
작품 속 이토모리 마을은 기후현의 소도시 히다 후루카와 마을을 모델로 했다. 이 마을은 도야마에서 지하철로 1시간 거리에 있다.
신카이 감독은 제작 전에 대사를 자신의 목소리로 가이드 녹음해서 성우들에게 전달했다.
신카이 감독은 이 작품 제작 당시 2011년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과 2014년 세월호 사건에 영향을 받았다. 감독에 따르면 세월호 침몰 때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영화에서는 지자체에서 행성이 추락하는데도 "집에서 대기하라"고 안내 방송을 한다.
카미키 류노스케가 남자 주인공 타키 목소리를 연기. 그는 '피아노의 숲' '마루 밑 아리에티' '썸머워즈'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다수의 애니메이션에서 주조연 목소리를 연기했다.
눈 내리는 도쿄 밤 풍경을 그린 장면이 압권이다. 극 중 일본에서 인기있는 라인 메신저가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