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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추천 DVD / 블루레이

네버 엔딩 스토리(블루레이)

울프팩 2021. 8. 2. 00:58

영화 '네버 엔딩 스토리'(The NeverEnding Story, 1984년) 제작을 위해 만난 볼프강 페터젠(Wolfgang Petersen) 감독과 원작자인 소설가 미하엘 엔데(Michael Ende)는 처음부터 맞지 않았다.

'특전 유보트'로 대박을 친 페터젠 감독은 할리우드 스타일의 대작 영화를 꿈꿨다.

 

반면 미하엘 엔데는 원작 소설의 구성을 그대로 지키기를 원했다.

순수함을 잃은 어른들 때문에 사라져 가는 상상과 꿈의 세계를 아이들의 동심으로 회복하는 원작의 정신이 바뀌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작자와 페터젠 감독은 방대한 원작에서 덜어낼 것은 덜어내고 국제적으로 통할 만한 블록버스터급의 스펙터클한 볼거리가 있어야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페테전 감독과 엔데는 크게 싸워 영화가 제작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엔데는 자신의 뜻과 다른 영화를 용납하지 못해 법원에 상영 중지 가처분 신청까지 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해 개봉했지만 엔데는 영화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페터젠 감독은 원작자인 엔데가 영화와 책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불만스럽게 생각했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은 때문인지 영화는 여러 가지로 엉성하고 아쉬운 작품이 돼버렸다.

 

내용은 허무가 집어삼키려는 판타지아 세상을 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소년 전사 아트레이유(노아 해서웨이 Noah Hathaway)의 모험을 다뤘다.

영화는 바스티안(바렛 올리버 Barret Oliver)이 우연히 구한 책 속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이야기 속 이야기의 액자식 구성을 따랐다.

 

페테전 감독은 원작 소설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기이한 캐릭터들과 세트를 모두 만들었다.

몸길이가 15미터를 넘어가는 용, 25명이 달라붙어 조종해야 하는 바위 인간, 말을 집어삼키는 늪지대와 거대한 거북, 길목을 지키는 스핑크스 등을 직접 만들어 촬영했다.

 

요즘처럼 컴퓨터 그래픽이 발달하지 않은 1980년대에 만든 영화이니 직접 만드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여기에 유압 펌프로 움직이는 무대 장치를 만들어 90도로 뒤집으며 바람에 아트레이유에 몸이 날리는 장면을 찍고, 천천히 내려가는 승강 장치에 말을 올려놓고 늪에 가라앉는 장면을 찍는 등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만큼 요즘 시각이 아닌 당시 관점으로 보면 꽤 그럴듯한 볼거리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 셈이다.

하지만 영화가 그렇게 크게 성공하지 못한 것은 이야기의 부실함 때문이다.

 

원작에서 너무 많은 부분을 덜어내고 볼거리에 집중하는 바람에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부분들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판타지아 세계나 소년 전사 아트레이유의 배경에 대한 이야기, 각종 캐릭터에 대한 설명 등이 모두 부재하다.

 

각 캐릭터들은 갑자기 등장하고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 존재인지를 알 수 있는 인과관계 장치들이 하나도 없는 채 각각 따로 논다.

그 바람에 엔데의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며 난해한 작품이 돼버렸다.

 

그래도 건진 게 하나 있다면 1980년대 유명한 팝 음악 작곡가였던 조르지오 모로더(Giorgio Moroder)가 만든 주제가 'Never  Ending Story'다.

팝 밴드 카자구구의 리드 싱어였던 리말(Limahl)이 부른 이 노래는 사실 유럽에서 상영한 오리지널 독일판 영화에는 없다.

 

페터젠 감독이 국제적으로 히트하려면 대중적 느낌의 노래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해 모로더에게 의뢰해 미국 등 해외판에만 유명한 주제가를 삽입했다.

이 노래는 빌보드 차트에도 오르면서 당시 국내 FM에서도 많이 틀어 영화와 별개로 인기를 끌었다.

 

그나마 페터젠 감독이 판단을 잘한 부분이다.

페터젠 감독은 이 작품 이후 완전히 할리우드 대중 영화감독으로 돌아서 '사선에서' '아웃 브레이크' '에어포스 원' '퍼펙트 스톰' '트로이' '포세이돈' 등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었다.

 

국내에는 개봉 30주년 기념판이 블루레이로 출시됐다.

1080p 풀 HD의 2.40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최신작과 비교하면 떨어지지만 옛날 영화 치고는 무난한 화질이다.

 

오래된 작품이어서 필름 입자감이 두드러지며 윤곽선이 두텁고 약간 퍼져 보이지만 잡티나 스크래치 등 필름 손상 흔적은 없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괜찮다.

 

천둥소리 등 각종 효과음이 리어 채널을 적절하게 울린다.

부록으로 페터젠 감독의 해설, 제작과정과 제작 배경, 디지털 복원작업 설명 및 촬영 일지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이 가운데 디지털 복원작업을 설명한 부록은 HD 영상으로 수록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초반 장면에서 뛰어가는 아이들과 부딪치는 금발머리 행인이 깜짝 출연한 볼프강 페터젠 감독이다.
'모모'라는 책으로 유명한 원작자 미하엘 엔데는 1979년에 독일에서 원작 소설을 출간했다.
사람이 탈을 쓰고 거대한 바위 인간을 연기. 팔 다리 얼굴 등에 전선을 연결해 25명이 표정과 동작 등을 조종했다.
모터로 날개를 움직이는 미니어처 모형을 이용해 거대한 박쥐가 날아가는 장면을 촬영.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사람들이 전선으로 연결된 인형을 조종해 움직임을 표현했다.
실내 장면은 모두 독일 뮌헨의 바바리아 스튜디오에서 촬영. 사람이 탈을 쓰고 판타지아 여왕의 궁전에 서 있는 괴상한 생명체들을 연기했다.
소년 전사 아트레이유를 연기한 노아 해서웨이는 인디언처럼 보이도록 분장과 선탠을 하고 승마 훈련을 따로 받았다.
이탈리아 화가 울 데 리코가 특이한 생명체와 풍경 등을 디자인했다.
늪 지대도 스튜디오에 만든 세트다. 늪이 말을 집어 삼키는 장면은 유압 프레스 위에 말을 올려 놓고 목까지 잠기도록 천천히 내리면서 촬영.
거대한 거북의 얼굴도 유선으로 작동하는 모형을 만들어 사람들이 조종하며 촬영.
제작진이 6,000개의 플라스틱 조각으로 덥힌 몸길이 15미터의 착한 용 팔코를 만들었다. 제작진은 용이 움직이는 장면을 18명의 조종자가 전선으로 연결된 용을 움직이며 찍었다.
스핑크스 또한 제작진이 실제로 만들었다. 음악은 '특전 U보트'로 유명한 클라우스 돌딩어가 맡았고 국제판의 주제가와 일부 삽입곡만 조르지오 모로더가 작곡했다.
바람에 아트레이유가 휘날리는 장면은 유압 펌프로 작동하는 일종의 짐벌같은 장치에 세트를 만들고 이를 90도로 기울여 마치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 뒤 찍었다. 몸이 날리는 장면은 키 작은 스턴트맨이 연기.
출연 당시 11세였던 타미 스토로나흐가 오디션 보고 캐스팅돼 여왕을 연기. 뮌헨 시네포스트프로덕션에서 2012년 블루레이 제작을 위한 디지털 작업을 했다. 35mm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과 원본에서 잘린 부분이 포함된 듀프 포지티브 필름을 먼지 제거작업 후 3K 해상도로 스캔했다.
미하일 엔데는 이 영화 속 판타지아가 나이트클럽 같다며 전체적으로 평범하고 지루한 영화라고 혹평했다. 그는 처음에 안제이 바이다나 구로사와 아키라가 이 작품의 감독을 맡기를 원했다.
시내 장면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촬영. 도심에 용이 나타나는 장면은 원작에 없는 내용을 페터젠 감독이 넣었다. 엔데는 이 때문에 화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