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더 파라다이스: 시즌1(블루레이)

울프팩 2014. 3. 2. 18:15
"백화점은 불안정한 열정의 유용한 배출구이며 신과 남편이 지속적으로 싸워야 하는 곳이다."
지난해 국내 최초 완역돼 나온 에밀 졸라의 소설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에 나오는 구절이다.

에밀 졸라는 아내를 따라 매일같이 파리의 봉마르세, 루브르, 플라시 클라시 백화점을 찾아 5,6시간씩 머물렀다.
처음에는 백화점 단골 손님인 아내의 뒤를 따라다녔지만 나중에는 점원과 손님을 주의깊게 관찰하며 소설의 밑천으로 삼았다.

'목로주점' 등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 에밀 졸라의 작품세계를 생각하면 백화점이라는 소재가 다소 의외지만, 그는 이 속에서 자본주의에 물든 19세기의 상업적 속성을 봤다.
영국 BBC1이 2012년 방영한 8부작 드라마 '더 파라다이스'(The Paradise)는 바로 에밀 졸라의 소설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을 각색했다.

시대를 소설보다 20년 가량 앞당겨 1870년대로 설정했고, 무대를 파리가 아닌 영국으로 잡았다.
하지만 장소와 시대만 달라졌을 뿐 뭇 군상을 꼼꼼히 관찰한 에밀 졸라처럼 백화점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복잡 다단한 인간 관계를 세세히 파헤친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작품을 보면 백화점은 비단 각종 상품들만 모이는 곳이 아니라 다종다양한 인간들의 집합소이기도 하다.
조직 사회에서 발생하는 각종 시기와 질투, 애증이 얽히는 백화점은 그야말로 사회의 축소판이다.

파라다이스 백화점에서 펼쳐지는 풍경을 현대로 옮겨놓아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요즘 세상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어서 시대극인데도 불구하고 적극 공감이 간다.
그만큼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했다.

더불어 이 작품은 미술의 승리라고 할 만 하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의상, 건축, 소품 등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꼼꼼하게 재현했다.

이를 세밀하게 살린 영상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바겐세일, 특별 상품전, 사은품 등 요즘 백화점의 행태들을 시대를 앞서 엿볼 수 있는 점도 재미있는 볼거리다.

여기에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애증의 삼각관계와 살인사건 등 미스테리적 기법을 가미해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끌어간 점도 돋보인다.
다만 새로 들어온 여사원이 아이디어를 떠올릴때마다 적재적소에 나타나 이를 밀어주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사장의 존재가 다소 작위적으로 보인다.

인지도가 높지 않아 기대를 하지 않고 봤는데, 훌륭한 구성과 뛰어난 미술,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에 반한 작품이다.
지난해 방영한 시즌2도 블루레이로 출시되기를 기대해 본다.

8편의 에피소드를 2장의 디스크에 담은 블루레이 타이틀은 1080p 풀HD의 1.78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한다.
전체적으로 뽀얀 느낌의 소프트한 영상은 화사한 색감이 잘 살아 있으며 윤곽선이 깔끔하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두드러지는 편은 아니다.
부록으로 HD로 제작된 제작과정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시골 출신의 가난한 소녀인 주인공 데니스를 연기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조안나 밴더햄.
에밀 졸라의 원작도 좋지만 이를 각색한 빌 갤러거의 각본도 훌륭하다.
"생각도 질문도 하지마. 그냥 머리를 비우고 손만 놀리는 거야." 튀는 직원을 용납하지 않는 상사의 한마디는 요즘 기업들에서도 흔히 통용된다.
데이비드 드루리, 빌 갤러거, 케네스 글레넌 등 여러 명이 감독을 맡았고 피터 그린할, 사이몬 리차드, 마크 패트리지 등이 알렉사 HD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했다.
빅토리아 시대 상류층 여성들은 직접 쇼핑을 하지 않고 하인들을 보냈는데, 백화점이 이런 상류층 여성들의 습관을 바꿔 놓았다.
백화점은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물건을 한데 모아놓고, 외상 위주였던 일반 상점과 달리 현찰 거래를 했다.
 덕분에 벌어들인 현찰을 바로 상품 구입에 투자해 모로코 인도 등 해외에서 물건을 현금으로 싸게 사 올 수 있었다.
백화점 사장을 연기한 이뮨 엘리엇과 귀족의 딸을 연기한 일레인 캐시디. 아일랜드계인 일레인 캐시디는 두 아이의 엄마로, 영어 아일랜드어 독어 스페인어 4개국어를 한다.
빅토리아 시대 의상은 티소의 그림을 참고로 제작했다.
영국 더럼에 있는 램버튼 사유지에서 촬영했다.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은 화장도 거의 하지 않았다. 가벼운 볼 터치나 하녀들을 시켜 루즈를 칠하는 정도였다. 더러 뺨이 발그레하게 보이도록 꼬집기도 했다.
백화점이 있는 거리는 아예 램버튼에 통채로 지은 세트다. 세트도 빅토리아 시대의 건축자재를 이용해 만들었다.
잔잔한 실내악 분위기의 음악도 좋다. 음악은 마우리지오 말라니니가 담당.
세트 건물 벽은 빅토리아 시대의 석회를 이용해 발랐다. 과거 석회는 요즘과 달리 건조에 3주가 걸려 세트 제작에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건물의 회반죽 문양 등은 몰타 기술자를 데려와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시즌1은 2012년 9~11월, 시즌2는 2013년 10~12월에 영국 BBC1에서 방영됐다.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The Paradise: Season One (더 파라다이스 시즌1) (Blu-ray)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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