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추천 DVD / 블루레이

라스트 사무라이

울프팩 2005. 3. 11. 01:17

에드워드 즈윅(Edward Zwick) 감독의 '라스트 사무라이'(Last Samurai, 2003년)를 처음 본 것은 2003년 11월 일본에서였다.
프로모션차 일본을 방문한 톰 크루즈(Tom Cruise)를 인터뷰하기 위해서였다.

워너 측에서 마련한 시사 필름을 보고 난  뒤 반감과 아름다움이 교차된 묘한 느낌을 받았다.
한마디로 사무라이 찬가였기 때문이다.

막부 말기 일본이 신식 군대를 도입하면서 쓸모없어진 사무라이들이 집단으로 반발하는 내용의 실화를 다뤘다.
주연을 맡은 톰 크루즈는 사무라이에 반해 제작자로 나서기까지 했다.

처음부터 사무라이에 감화된 상태에서 만든 작품인 만큼 무조건 사무라이를 찬양하는 식의 내용은 거슬렸지만 존 톨이 카메라를 잡은 수려하고 아름다운 영상이 눈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비장미 넘치는 한스 짐머의 음악까지 더해져 감정을 자극한다.

특히 인상 깊은 대목은 영화 말미에 톰 크루즈가 천황의 신식군대와 최후의 일전을 앞두고 준비하는 대목이다.
사무라이에 동화돼 죽으러 나가는 톰 크루즈는 그동안 부상당한 자신을 돌봐준 일본 여성(코유키 小雪)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방에 들어선다.

여성은 전장에서 톰 크루즈의 손에 전사한 사무라이 장수의 부인이다.
여자의 입장에서는 남편을 죽인 원수를 돌본 셈이다.

그러나 여인은 그동안 톰을 보살피며 정이 들었다.
여인은 톰을 불러 유품으로 간직한 남편의 사무라이 갑옷을 건네며 살아 돌아와 달라는 뜻을 전한다.

그러면서 갑옷을 하나씩 입혀준다.
갑옷밑에 받쳐 입는 하오리를 건네주고, 뒤로 돌아 허리춤에 띠를 천천히 매어준다.

어깨선도 반듯하게 펴주고 옷깃도 매만져 준다.
그 손길이 한없이 유장하다.

카메라는 마치 톰의 눈이 된 양, 여인의 손길을 천천히 따라간다.
끝으로 갑옷을 입혀준 여인은 톰의 뒤로 돌아가 조용히 톰을 안아본다.

한마디 말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 장면에서 옷을 입혀주는 모습이 그토록 애틋한 에로티시즘으로 다가올 줄 몰랐다.
오히려 죽으러 가기 전 마지막 인사처럼 나누는 뜨거운 정사보다 이 장면이 더없이 숭고하고 비장하며 아름답다.

그러면서도 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야릇한 에로티시즘이 깔려 있다.
2.3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괜찮다.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도 전장의 박력을 그대로 전달한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 작품은 서양인의 시각에서 본 사무라이에 대한 동경과 찬사다.
사무라이 장수로 등장한 와타나베 켄은 촬영 전 오랜 기간 백혈병 투병으로 머리가 다 빠져있던 상태. 그는 이 작품으로 지난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사무라이 맹장으로 나온 사나다 히로유키. '링'의 박사로 나온 인물. 그는 영국 극단에서 연극을 할 정도로 영어를 곧잘 한다.
피톨까지 보일 만큼 느리게 촬영한 액션 장면은 묘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든다. 이 장면은 마치 샘 페킨파 감독의 '와일드 번치'를 연상케 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대목. 떠나는 남자를 가슴에 품는 여인 역할은 코유키가 맡았다. 그는 이 작품에서 학처럼 고고한 이미지를 풍겼다.
체중을 12Kg이나 늘리며 작품에 집중한 톰 크루즈. 그를 움직인 것은 니토베 이나조가 쓴 '사무라이'라는 책이었다. 사무라이의 후예 이나조는 19세기말 미국에 유학 가서 사무라이의 실상보다 정신세계를 높이 평가한 이 책을 영어로 썼다. 톰은 인터뷰 때 촬영기간 내내 이 책을 갖고 다니며 읽었다고 말했다. 이 책은 국내에도 같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이 작품에 쓰인 갑옷과 검은 일본의 장인들이 만든 수제품이다.
쏟아지는 총탄과 포화를 뚫고 마지막 돌격을 감행하는 사무라이들의 모습이 비장미를 느끼게 만든다.
라스트 사무라이가 돌아가는 사무라이 마을은 일본이 아닌 뉴질랜드에 만든 세트다. 제작진은 이곳에 벚나무도 옮겨 심고 수천 송이 꽃을 철사로 매달아가며 4계절을 묘사했다.

'추천 DVD / 블루레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노우맨  (4) 2005.03.19
트레이닝 데이  (4) 2005.03.18
델마와 루이스  (5) 2005.02.28
비포 선라이즈 & 비포 선셋  (10) 2005.02.21
노팅힐 (CE)  (5) 2005.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