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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트의 만찬(블루레이)

울프팩 2018. 3. 15. 18:23

가브리엘 액셀 감독은 우울한 북구의 풍경 위에 사랑과 감사라는 따뜻한 물감을 풀어놓았다.

그가 만든 '바베트의 만찬'(Babettes Gaestebud, 1987년) 이야기다.

 

이 작품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원작자로 유명한 덴마크의 여성작가 카렌 블릭센의 단편을 토대로 만들었다.

내용은 19세기 말 프랑스혁명 이후 쫓기듯 덴마크의 작은 마을로 숨어든 바베트라는 여성과 주변 인물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오로지 신에 대한 헌신 하나로 살아온 자매들의 일을 돌보며 살던 바베트가 어느 날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다.

자매는 바베트가 돈을 많이 벌었으니 가난한 자신들을 곧 떠날 거라며 안타까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바베트는 복권 당첨 기념으로 저녁을 준비할 테니 맡겨달라고 자매에게 요청한다.

아무 생각 없이 허락한 자매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신심이 흔들릴 만큼 깜짝 놀랄만한 저녁상을 받게 된다.

 

액셀 감독은 원작자의 흔치 않은 신비로운 이야기를 충실하게 영상으로 재현했다.

물론 영화에 맞게 일부 내용을 고친 부분도 있지만 대세의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우울한 덴마크 어촌마을의 풍경과 만찬 준비다.

북구의 겨울은 종일 햇빛을 보기 힘들 만큼 흐린 날이 많아 영상으로 찍으면 단조롭게 보일 수 있는데, 액셀 감독은 이 조차도 이국적이면서 서정적으로 보이도록 잘 찍었다.

 

특히 와이드스크린의 장점을 살려 공간과 여백의 미를 잘 살렸고, 더러 햇빛이 비치는 날이나 저녁노을이 비낀 하늘을 적절하게 색깔을 바꾼 그림처럼 잘 활용했다.

그래서 우울하고 답답해 보일 수 있는 북구의 풍경이 잘 그린 풍경화처럼 다가온다.

 

여기에 바베트가 깜짝 놀랄만한 비밀이 숨어 있는 음식을 장만하는 과정을 마치 요리 프로그램처럼 찬찬하고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 과정이 신비롭고 기이하면서도 충격적이지만 이 요리를 접한 사람들의 반응을 기다리고 기대하게 만드는 재미가 있다.

 

그 여정의 끝은 결국 옆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 음식을 만들어준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해서까지 감사와 사랑으로 차오르게 만든다.

한마디로 종교적 영성이 충만한 작품이지만  그 속에서 음식이라는 세속적 즐거움을 통해 사랑과 감사를 느끼게 만드는 영화다.

 

그 점이 카렌 블릭센의 신비한 힘이자, 가브리엘 액셀이 보여준 마술이다.

여기에는 특별히 연기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진짜 마을 사람처럼 보이는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도 한 몫했다.

 

언뜻 보면 그저 주름 많은 노인들처럼 보이지만 이 중 여러 배우는 위대한 칼 드레이어 감독의 작품들을 빛낸 실력파 노장들이다.

이 작품은 이 모든 것이 잘 어우러진 덕분에 제 60회 아카데미상 시삭싱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았고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런던 비평가 협회상에서도 같은 부문에서 수상했다.

 

이번에 국내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1080p 풀 HD의 1.78 대 1 화면비를 지원한다.

화질은 필름의 잡티와 얼룩이 그대로 드러나며 색감이 탁하게 보이는 등 그저 그렇다.

 

일부 클로즈업과 실내 장면은 디테일이 좋지만 전체적으로 화질이 좋은 편은 아니다.

음향은 DTS HD MA 2.0 채널을 지원한다.

 

부록으로 감독 소개, 주연 배우 스테판 오드런 인터뷰, 카렌 블릭센 소개, 음식 소개 등 볼 만한 내용들이 들어 있는데 안타깝게도 한글자막이 들어있지 않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가브리엘 액셀 감독은 스페인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부인이 아름다운 이야기라며 소개한 카렌 블릭센의 작품을 읽고 영화화를 결심했다.

프랑스의 끌로드 샤브롤 감독도 이 작품을 연출하고 싶어 했으나 인생의 절반을 덴마크에서 살고 나머지 30년 이상을 프랑스에서 산 액셀 감독이 맡는 게 나을 것이라고 생각해 포기했다.

덴마크 북서부의 유틀란트 지역에서 촬영.

오래된 교회 장면은 덴마크 유틀란트 지역에 있는 마럽 교회에서 촬영. 1250년경 건립된 이 교회는 절벽 위에 있다.

원작의 배경은 노르웨이의 베르레바그 마을인데 액셀 감독이 이를 덴마크의 유틀란트 해안 마을로 바꿨다.

마을 사람들로 나온 배우들은 칼 드레이어 감독의 작품에 출연한 노장들이다. 늙은 자매 중 언니로 나온 비르지트 페데르스피엘을 비롯해 리스베스 무빈, 프레벤 레르도르프 라이에와 마부로 나온 벤트 로데 등이 칼 드레이어 감독의 작품에 출연했다.

액셀 감독은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하메르스회의 영향을 받았다. 회색빛의 단색조에 가까운 장면은 하메르스회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제작진은 집이 몇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을 유틀란트에 만들었다. 유틀란트는 이 장면에 나오는 마차를 끄는 다리가 짧은 덴마크산 말 종류의 명칭이기도 하다.

원작자인 카렌 블릭센은 이자크 디네센이라는 필명으로 다양한 작품을 썼다. 그는 1885년 덴마크의 룽스테드에서 태어나 6촌인 브로 폰 블릭센 남작과 결혼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 맛있게 마시는 식전주는 스페인의 셰리주인 아몽틸라도. 맛있는 샴페인은 '미망인의 눈물'로 통하는 뵈브 클리코라고 한다.

메인 요리는 다소 엽기적인 까유 엉 사코파쥬. 메추라기에 배를 가르고 푸아그라와 송로버섯으로 채운 뒤 구운 요리다. 머리까지 그대로 보인다.

근대 제과 기술의 대부로 통하는 프랑스의 마리 앙토낭 카렘이 만든 데코레이션 케이크도 등장.

카렌 블릭센은 결혼 후 케냐로 건너가 커피농장을 경영했으나 작황이 좋지 않아 파산했다. 중간에 남편에게서 매독이 옮아 고생한 끝에 이혼했으며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소재가 된 애인 데니스 핀치히튼을 만났으나 핀치히튼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뒤 1931년 덴마크로 돌아갔다.

바베트를 연기한 스테판 오드런. 까뜨린느 드뇌브도 주연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했다.

바베트의 만찬
이자크 디네센 저/노에미 비야무사 그림/추미옥 역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바베트의 만찬 : 블루레이
가브리엘 악셀,스테파니 오드런(바베트), 버짓 페더스피엘(마티나), 보딜 카이어(필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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