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불의 전차(블루레이)

울프팩 2022. 4. 30. 22:49

2024년 하계 올림픽이 열리는 프랑스 파리(Paris)는 올림픽을 세 번이나 개최하는 도시다.

1900년 열린 제2회 올림픽과 1924년 제8회 올림픽이 파리에서 열렸다.

 

2024년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리면 1924년 이후 100년 만에 올림픽을 유치하는 셈이다.

특히 제8회  파리 올림픽은 여러 가지 역사적 의미가 있는 대회다.

 

라디오 중계와 선수촌, 제8회 파리 올림픽이 바꾼 것들

파리는 당시까지 세계 최초로 두 번이나 올림픽을 개최한 도시가 됐다.

이 대회를 기점으로 올림픽은 동계와 하계로 나뉘었다.

 

그 전에는 원래 그리스 올림픽에 겨울 종목이 없었다는 이유로 분리되지 않았는데 파리 올림픽부터 처음으로 승인을 받았다.

올림픽 엠블렘과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라는 올림픽 표어도 파리 올림픽 때 처음 도입됐다.

 

아울러 허름한 판잣집 같지만 올림픽 선수촌이 처음 등장했다.

또 처음으로 라디오로 대회가 생중계되면서 올림픽 열기에 불을 지폈다.

 

'쿠베르탱, 누르미, 와이즈뮬러 그리고 리델' 올림픽의 스타들

제8회 파리 올림픽은 또한 위대한 인물들의 전설을 낳은 대회였다.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인 쿠베르탱이 이 대회를 끝으로 물러나며 30년의 영광을 마무리했다.

 

이 대회에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스타는 미국의 수영선수 조니 와이즈뮬러(Johnny Weissmuller)다.

영화 '타잔'의 주인공으로 익숙한 그는 자유형 100m와 400m, 800m 계영 등에서 금메달을 따며 수영 경기 사상 최초의 올림픽 3관왕이 됐다.

 

하지만 당시 대중들에게 최고의 스타는 핀란드의 달리기 선수 파보 누르미(Paavo Nurmi)였다.

그는 뛰어난 체력과 기량으로 무려 5개의 금메달을 따내 핀란드를 미국에 이어 종합 순위 2위에 올려놓았다.

 

또 미국의 윌리엄 휴버드가 멀리뛰기에서 우승하며 올림픽 사상 최초의 흑인 금메달 선수가 됐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감동 스토리를 만든 영국 육상선수인 에릭 리델(Eric Liddell)과 해럴드 에이브러햄(Harold Abrahams)이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리델은 주종목인 100m 달리기가 안식일에 열리자 불참하고 대신 400m에 나가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다.

그 바람에 리델 대신 100m에 나간 에이브러햄 역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들의 활약 덕분에 영국은 금메달 9개로 종합 순위에서 4위에 올랐다.

1위는 금메달 45개의 미국, 2위 핀란드(금 14개), 3위 개최국 프랑스(금 13개) 순이었다.

 

잊지 못할 반젤리스의 명곡과 명장면들

리델과 에이브러햄의 실화를 영화로 만든 것이 휴 허드슨(Hugh Hudson) 감독의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 1981년)다.

이 작품은 정작 영화보다 잊지 못할 명곡인 반젤리스의 주제곡으로 유명하다.

 

그리스 록밴드 아프로디테스 차일드 출신의 반젤리스(Vangelis)는 이 작품으로 처음 영화 음악을 맡아 너무나도 유명한 주제곡을 작곡해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이후 그는 '블레이드 러너' '미싱' '1492 콜럼버스' '비터 문' 등의 영화음악을 줄줄이 맡았다.

 

광고로 주목받은 허드슨 감독은 이 작품으로 처음 장편 영화 연출을 맡은 초짜였다.

그런데도 그는 신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안정된 연출 솜씨와 극적인 스토리텔링으로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주목을 받았다.

 

그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이 작품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아 '그레이스토크' '혁명' 등의 작품을 연출했으나 이 작품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이 작품은 특이 스포츠 소재의 드라마인데도 불구하고 영상이 참으로 아름답다.

 

비틀스의 '헬프'를 찍은 데이비드 왓킨은 이 작품의 촬영감독을 맡아 안정된 구도의 수려한 풍광을 화면에 잘 담아냈다.

특히 압권은 달리기 경주 장면이다.

 

20초 미만으로 순식간에 끝나 버리는 달리기 경주를 슬로 모션으로 촬영해 극적이고 긴장된 순간의 선수들 표정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잘 잡아냈다.

이 작품이 보여준 극적인 경주 장면은 이후 스포츠 영화의 전범이 됐다.

 

갈등과 편견을 뛰어넘은 작품

아울러 허드슨 감독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고 불굴의 승리를 이룬 인물들에 초점을 맞추며 당시 사회적 메시지를 잘 담아냈다.

보수적인 대처 정권 치하에서 영국은 갈등과 편견이 만연했다.

 

특히 극우 보수정권인 대처 수상이 자본가와 기업 중심의 성장 우선주의 정책을 펴면서 빈부 격차가 심화돼 노동 쟁의가 끊이지 않았고 인종 차별이 심했다.

이런 상황을 허드슨 감독은 극 중 리델(이안 찰슨 Ian Charleson)과 해럴드(벤 크로스 Ben Cross)의 모습을 통해 투영했다.

 

리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해럴드 에이브러햄은 당시 유대인에 대한 차별이 심한 상황에서 당당하게 유대인이라고 밝힌다.

당시 유대인은 북부 노동계급을 대변한다.

 

이는 곧 달리기 경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신분 차이를 뛰어넘어 목표를 이루는 위대한 인간 승리를 보여준다.

리델 또한 영국 왕세자까지 나서서 만류하지만 결코 종교적 신념을 꺾지 않는다.

 

아울러 두 사람이 계층과 민족, 종교를 넘어 서로를 인정하는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이야기를 통해 대통합의 메시지를 강조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 감동한 것은 금메달을 따는 모습보다 그 뒤에 숨은 피와 땀, 그리고 편견을 이겨낸 불굴의 의지 때문일 것이다.

 

1080p 풀 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무난하다.

아무래도 오래전 작품인 만큼 화질이 아주 좋지는 않다.

 

디테일이 떨어지고 초반 장면에 한해 윤곽선이 두텁게 퍼져 보인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화질이 안정되고 색감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주로 전방에 소리가 집중됐다.

 

부록으로 감독의 음성해설, 제8회 파리 올림픽 소개, 제작자 데이비드 퍼트넘(David Puttnam) 소개, 허드슨 감독 소개, 제작과정과 20년 뒤 제작진의 재회 영상, 이튼 칼리지 방문 영상과 스크린 테스트, 추가 장면 등이 들어 있다.

일부 부록을 제외하고 대부분 한글 자막을 지원한다.

 

음성해설에도 한글 자막이 들어 있다.

일부 부록은 HD 영상으로 제작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선교사였던 부모 때문에 중국 텐진에서 태어난 에릭 리델은 어려서부터 달리기를 잘해 각종 육상대회에서 숱한 금메달을 땄다.
반젤리스의 명곡이 흐르는 가운데 바닷가를 달리는 유명한 초반 장면. 이를 위해 배우들은 8km를 뛰었다.
음악을 맡은 반젤리스의 아버지도 육상 선수였다. 허드슨 감독은 배우들이 작품의 분위기에 빠지도록 해변에 스피커를 설치해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촬영했다.
원래 브로드스테어스 해변에서 달리기를 찍으려고 했으나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루스 해변을 발견해 거기서 찍었다. 칼튼호텔 앞 장면만 브로드스테어스에서 촬영.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한 리델은 달리기 뿐 아니라 스코틀랜드 럭비 국가대표팀 선수로도 뛰었다.
헤럴드 에이브러햄은 캠브리지대학에 들끓던 반유대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올림픽 우승을 목표로 세웠다. 당시 영국과 올림픽위원회에도 반유대주의 분위기가 팽배했다.
대학 행사에서 연설하는 총장 역할은 영화 'if'를 찍은 유명한 린지 앤더슨 감독이 맡았다.
여러 대학에 촬영 요청을 했으나 모두 거절했고 이튼 칼리지만 허락했다. 허드슨 감독이 이튼 칼리지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해럴드를 연기한 벤 크로스는 2020년, 리델 역의 이안 찰슨은 1990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이 작품 출연때 무명이었다.
스코틀랜드 북부 퍼스셔에서 야외 달리기 장면을 촬영. 벌레가 많아 배우들이 스타킹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있었다.
해럴드를 연기한 벤 크로스는 촬영을 위해 매일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1,000개씩 하며 체력을 단련했다.
해럴드는 개선을 위해 샘 무사비니 코치를 기용해 논란이 됐다. 당시에는 선수가 혼자 해결하지 않고 코치를 두는 것을 아마추어리즘에 어긋난다고 봤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홀번에서 촬영.
제8회 파리 올림픽에서는 미국과 프랑스 럭비팀이 주먹다짐을 벌였고 프랑스와 아틸리아 펜싱팀은 칼부림을 벌였다.
영국 대표팀으로 출전한 100m 달리기 유력 금메달 후보인 리델은 결승전이 일요일, 즉 안식일이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며 출전을 포기했다. 그 바람에 리델은 국민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고 영국 왕실의 웨일즈 왕자까지 나서 출전을 부탁했으나 듣지 않았다.
이언 홀름이 무사비니 코치 역할을 했다.
키가 큰 해럴드는 보폭이 넓어 빨리 뛰었다. 놀랍게도 그의 비공인 100m 기록은 9.6초로 우사인 볼트만큼 빨랐다.
당시 달리기 선수들은 신발에 못을 달아 신었다. 그리고 흙손으로 석탄재를 다져서 만든 트랙에 발을 딛기 위한 홈을 직접 팠다.
해럴드는 날개를 펼치듯 독특한 자세로 100m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는 100m에서 금메달을 따서 유명해졌으나 다리를 다쳐 선수생활을 그만뒀다.
이후 해럴드는 타임지 특파원, BBC 라디오 국장을 지냈다. 유대인인 그는 1936년 히틀러 치하에서 열린 베를린 올림픽 때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가서 육상 경기를 해설했다.
유명한 데이비드 퍼트넘이 제작. '작은 사랑의 멜로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를 제작해 성공한 그는 이 작품 이후 '시골 영웅' '킬링필드' '미션' '멤피스벨' 등을 줄줄이 제작했다. 이후 콜럼비아영화사 회장을 거쳐 영국 상원의원, 영국 유니세프 회장을 지냈다.
리델은 100m 대신 출전한 400m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장로교 선교사로 일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일본군에게 잡혀 1943년 웨이시엔 수용소에 갇혔다가 뇌종양으로 43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