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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DVD / 블루레이

비포 선라이즈 & 비포 선셋

울프팩 2005. 2. 21. 00:13

리처드 링클레이터(Richard Linklater) 감독의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 1995년)와 '비포 선셋'(Before Sunset, 2004년)은 9년 간격을 두고 제작됐다.
'비포 선라이즈'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는 낯선 도시에서 하루를 보내며 연인으로 발전하지만 사랑을 이어가지 못하고 헤어진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나 '비포 선셋'에서 우연히 재회한 연인은 다시금 과거의 사랑을 이어가지 못한 후회를 털어놓는다.
링클레이터 감독은 두 작품 모두 채 하루가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연인의 이야기를 긴 대사와 롱 테이크로 다뤘다.


요즘처럼 장면 전환이 빠른 영상에 익숙하면 지루할 수도 있으나 두 사람의 대사를 음미하다 보면 영화의 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배우들의 호흡도 살리고 관객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는 롱 테이크를 쓴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두 작품 가운데 '비포 선셋'을 더 좋아한다.
'비포 선라이즈'가 젊은이들의 치기 어리고 감각적이며 약간은 무모하지만 열정적 사랑을 다뤘다면 '비포 선셋'은 젊은 날의 사랑을 이루지 못해 후회로 가득한, 그래서 현실이 결코 행복하지 못한 안타까운 사랑을 그렸다.


'비포 선라이즈'의 시대를 흘려보낸 세대가 돼서 그런지 '비포 선셋'이 더 호소력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그 이유는 아마 감독과 배우들을 데려간 세월 때문인 듯싶다.


그래서 '비포 선라이즈'는 20대들에게, '비포 선셋'은 30대들에게 호응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2편이 세트로 묶여 나온 DVD 타이틀은 두 작품 모두 화질이 좋지 않다.


특히 '비포 선라이즈'는 밤장면이 많아 어두운 부분의 디테일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고 '비포 선셋'은 저녁 햇살 속 촬영이 많아 전체적으로 화면이 뿌옇다.
음향은 '비포 선라이즈'는 돌비디지털 2.0, '비포 선셋'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지만 서라운드 효과가 거의 없기 때문에 5.1 채널이 의미 없다.


부록이 전무하다시피 해서 아쉽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비포 선라이즈>

달리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
젊은 날의 에단 호크는 주름도 없고 제법 잘 생겼다. 미국 청년인 그가 기차 안에서 여자에게 같이 내리자고 수작을 붙이는 대사를 들으면 선수 같다.
도발적이며 모험심 많은 프랑스 여성을 연기한 줄리 델피.
영화는 두 사람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덕분에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풍경을 함께 볼 수 있다.
자신들의 속내를 친구에게 전화하는 형식을 빌어 털어놓는 이 장면이 인상 깊다.
어느덧 밤이 지나 헤어져야 할 아침, 창 안에서 흘러나오는 하프시코드 연주에 맞춰 춤을 추는 이 장면도 아름답다.
6개월 뒤 비엔나 기차역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남자는 미국행 비행기를, 여자는 파리행 기차를 타고 떠난 뒤 공허함을 그들이 밤을 지새운 텅 빈 공원풍경으로 대신했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비포 선셋>

9년이 지난 속편도 전편의 바통을 이어받아 텅 빈 공간에서 시작한다. 마치 6개월 전 약속이 불발로 끝난 연인들의 상실감 같다. 오후의 햇살이 비추는 파리의 풍경이 나른하다.
잘 생긴 미국 청년은 주름살 투성이의 32세 베스트셀러 작가가 돼서 나타났다.
탱탱했던 프랑스 여성도 마찬가지. 함께 늙은 줄리 델피는 극 중 환경운동단체 일원이 됐다.
역시 두 사람은 걷고 또 걷는다. 이번에는 파리가 무대여서 센 강의 유람선도 탄다.
두 사람 사이로 멀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보인다.
참 가슴 아픈 장면이다. 남자는 여자를 못 만난 뒤 힘든 결혼생활을 어렵게 토로하고, 그 얘기를 듣는 여자는 안타까움에 남자의 머리를 안으려다가 손을 접는다.
이번 얘기는 전편보다 더 짧다. 왜냐하면 남자가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몇 시간이 전부이기 때문. 남자는 공항 가는 도중 여자의 집에 잠깐 들렀다.
여자는 헤어져있는 동안 남자를 생각하며 만든 자작곡을 들려준다. 이들은 왜 이런 사랑을 했을까. 여자는 말한다. "그때는 젊고 어리석었다"고.
니나 시몬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이 장면도 인상 깊다. 아니, 안타깝다. 그들은 과연 여기서 그냥 헤어질까, 아니면 연락처라도 교환하며 뒷날을 기약할까. 영화는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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