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신들의 전쟁

울프팩 2011. 11. 23. 23:11

그리스 로마신화를 보면 테세우스는 헤라클레스와 더불어 참 이야기거리가 많은 영웅이다.
워낙 힘이 장사였던 그는 침대 길이보다 길거나 짧은 사람을 자르거나 늘려 죽였던 악당 프로크루스테스, 크레타 미궁에 갇혀 제물로 받친 사람들을 잡아먹고 살던 황소머리를 가진 반인반우 괴물 미노타우로스, 여인왕국의 여전사들인 아마조네스 등을 모두 물리치고 아테네의 왕이 됐다.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여인네와 얽힌 사랑에는 아픔이 있다.
크레타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는 디오니소스의 꾐에 빠져 낙소스섬에 남겨두고 떠났고, 아리아드네의 동생인 페드라를 아내로 맞지만 비극으로 이어졌다.

아마조네스의 여왕 히폴리테 사이에서 낳은 아들 히폴리토스를 새엄마인 페드라가 사랑한 것.
하지만 히폴리토스가 눈길조차 주지 않자 페드라는 아들이 유혹해 죽는다는 무시무시한 거짓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여기서 바로 유명한 근친상간의 비극인 페드라의 비극이 탄생했다.
분노한 아버지 테세우스는 아들을 내쫓았고, 바닷가를 떠돌던 아들은 죽고 만다.
테세우스 또한 진실을 알고 슬픔에 빠져 이웃나라 왕인 리코메데스를 찾아갔다가, 오해한 리코메데스의 손에 살해 당했다.

이토록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지닌 신화 속 영웅 테세우스가 타셈 싱 감독의 영화 '신들의 전쟁'(Immortals, 2011년)에서는 신들의 대리인 격이 돼서 무신론자를 타도하는 전사로 둔갑했다.
죽은 가족들 때문에 신들을 원망하며 무신론자가 된 하이페리온 왕을 저지하기 위해 제우스 신의 강력한 후원을 등에 업고 불꽃 튀기는 싸움을 벌인다.

비록 이름 외에는 신화와 하등 상관없는 픽션이지만, 볼거리는 요란하다.
몸매 좋은 근육질 남성들이 울퉁불퉁 근육을 뽐내며 피가 튀는 칼부림을 벌인다.

여기에 제우스 신까지 뛰어들어 쇠사슬로 내리쳐 상대를 풍선처럼 터트리거나 머리를 부수는 등 과격한 액션이 난무한다.
언뜻보면 피가 난무해 잔혹할 듯 싶지만, 도를 넘어서니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져 마치 '갓 오브 워' 게임을 보는 것 같다.

'더 폴'에서 환상적인 영상으로 감탄을 자아냈던 타셈 싱 감독은 이 작품에서도 특유의 영상미학을 막판 20분의 과격한 하일라이트 격투 장면에서 유감없이 발휘했다.
때로는 빠르고, 때로는 느리게 속도를 조절하며 변화무쌍하게 촬영한 영상은 한 편의 발레를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신화 속에서 차용한 영웅들이 즐비하지만 늘어지는 이야기는 오히려 '갓 오브 워' 게임 만도 못하다.

아무리 뛰어난 영상의 달인들이 모였어도 스토리텔링이 약하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많은 재미를 주는데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사례가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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