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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 레드 라인 (블루레이)

울프팩 2014. 2. 3. 19:31

호주에서 북서쪽에 위치한 솔로몬 군도는 1,000여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졌다.
이 중에서 큰 편에 속하는 섬이 6개 있는데, 과달카날도 그 중 하나다.

과달카날은 길이 140km, 폭 48km 정도의 섬으로, 제주도의 3.5배 크기다.
스페인의 페루 총독이 서쪽으로 가면 황금도시가 있다는 소문을 쫓아 조카인 알바르도 데 멘다나를 보내 발견한 섬인데, 멘다나는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고향 지명을 따서 섬 이름을 명명했다고 한다.

이름도 생소한 이 곳이 제 2 차 세계대전때 태평양 전투의 승패를 가른 분수령이 됐다.
태평양 전역에서 보면 작은 섬이지만 이 섬을 장악하면 호주는 물론이고 솔로몬 해역과 멀리 필리핀 제공권까지 넘볼 수 있게 돼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다.

이를 알아본 일본군은 1942년 7월, 재빨리 공병대에 해당하는 제 11 설영대를 보내 이 곳에 비행장을 건설하고 근처에 흐르는 강 이름을 따서 룽가비행장으로 불렀다.
여기에는 우리 민족의 비극적 역사도 서려 있다.

당시 제 11 설영대의 대부분은 한국에서 강제 징용된 조선인 노무자였다.
이들은 삽과 곡괭이로 정글을 헤치고 들어가 비행장을 건설했다.

미군이라고 바보가 아닌 이상 가만 있을 리 없다.
한 달 뒤인 1942년 8월에 와스프, 사라토가, 엔터프라이즈 등 3척의 항공모함을 포함해 79척으로 편성된 미 해군 기동함대를 보내 섬 점령에 나선다.

이때부터 유명한 과달카날 전투가 시작된다.
미군은 이 곳에서 1898년 미-스페인 전쟁 이후 미 육군과 해군이 처음으로 협동작전을 실시했다.

즉, 항모에서 이륙한 미 해군 폭격기와 전투기가 섬을 두들기고 함포 사격으로 쑥대밭을 만든 뒤 해병대와 육군 보병들이 상륙하는 식이다.
미군은 6개월에 걸친 과달카날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협동작전을 능숙하게 실시할 수 있게 됐으며 태평양 전쟁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

반면 일본군은 이 섬에서 2만8,500명이 전사하며 솔로몬 해역의 제공권을 내주고, 6차례의 해전에서 패배하며 해군 또한 몰락하게 된다.
과달카날에 얽힌 이야기로는 두 가지가 유명하다.

하나는 불도저 전쟁이다.
당시 일본군은 삽과 곡괭이로 며칠에 걸려 비행장을 건설한 반면 미 공병대는 불도저 1대와 그라인더를 가져와 순식간에 비행장을 만들었다.

특히 불도저는 폭격이나 포격 이후 더 진가를 발휘했다.
일본군은 미군의 폭격과 포격으로 구멍이 뚫린 활주로 보수에 며칠이 걸린 반면, 미군은 불도저로 몇 시간 만에 간단히 끝내고 바로 보복 공중 공격에 나서 전황 전개에 엄청나게 유리했다.

또하나는 미국의 제 35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일화다.
제 2 차 세계대전 당시 어뢰정 PT 109호 정장이었던 케네디 중위는 1943년 8월 과달카날 해역에서 일본 구축함 아마기리를 공격하다가 충돌하면서 침몰해, 7km를 헤엄쳐 작은 섬에 1주일간 숨어 지낸 뒤 구조됐다.

이처럼 여러 사연을 갖고 있는 과달카날 전투를 소재로 만든 영화가 테렌스 맬릭 감독의 '씬 레드 라인'(The Thin Red Line, 1998년)이다.
섬에 상륙한 미 육군 제 25 보병사단 병사들이 전투를 치르며 변해가는 모습을 담았다.

'황무지' '천국의 나날들'로 주목을 받은 맬릭 감독이 20년간 잠적했다가 갑자기 나타나 만든 영화가 전쟁물이어서 당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왠지 철학적인 그와 전쟁물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테렌스 맬릭의 명성 때문에 조지 클루니, 닉 놀테, 숀 펜, 존 트라볼타, 존 쿠삭, 우디 해럴슨, 존 새비지 등 스타들이 줄줄이 출연했다.
게리 올드만, 믹키 루크, 마틴 쉰, 비고 모르텐슨 등 편집에서 잘려 나간 배우들까지 포함하면 더 많은 스타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여느 전쟁물과 다르다.
맬릭 특유의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영상이 이 작품에도 고스란히 투영됐다.

카메라는 긴 호흡으로 병사들의 모습과 과달카날 섬의 풍광을 관찰하듯 보여준다.
바람이 불어 풀이 눕는 초지를 살금살금 전진하는 병사들과 포연이 사라진 뒤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번지는 노을은 한 편의 영상시를 보는 것 같다.

더불어 동식물에 관심이 많은 맬릭 감독 답게 수시로 나오는 열대 조류와 식물들의 모습이 마치 자연 다큐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그 속에서 포화가 작렬하고 비참하게 스러져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강한 충격을 준다.

오히려 아름다운 자연과 대비되는 자기 파멸적인 인간의 모습은 전쟁의 비참함과 무의미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이 작품은 전쟁물로는 드물게 시적이면서 철학적인 작품이 됐다.

1080p 풀HD의 2.3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수려한 영상을 잘 살렸다.
윤곽선이 깔끔하고 색감이 분명해 블루레이를 보는 맛이 난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잘 살아 있다.
리어를 통해 사방을 휘감는 바람소리 등이 선명하다.

부록으로 제작자와 촬영감독, 프로덕션 디자이너의 음성해설, 인터뷰, 편집, 음악, 삭제장면과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과달카날 전투를 다룬 뉴스필름 등이 모두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 작품은 과달카날 전투에 참전했던 제임스 존스의 소설이 원작이다. 실제로 촬영도 과달카날과 호주 등에서 했다.
과달카날은 아름다운 자연을 가졌지만 말리라이 창궐지로 악명이 높아서 관광지로 뜨지 못한다. 현지인들은 끊임없이 말라리아에 시달리고 있으며, 제작진들도 말라리아 외에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M1 소총 등 영화에 쓰인 병기는 모두 베트남에서 구입했다. 베트남에는 월남전 때 미군이 버리고 간 무기가 꽤 많이 있는데 이를 이런 식으로 활용한다.
이 장면처럼 과달카날 전투의 일부 장면은 호주 퀸즐랜드에서 촬영.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조니 뎁, 브래드 피트, 니컬라스 케이지, 케빈 코스트너, 에단 호크 등도 출연 대상으로 물망에 올라 감독을 만났다.
촬영지였던 호주 퀸즐랜드에는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맹독성 뱀 10종 가운데 5종이 산다. 그 중 하나가 영화에도 한 장면 등장하는데, 연기가 아니라 촬영 중 실제 뱀을 만난 장면이란다. 폭발 장면은 퀸즐랜드의 개인 사유지를 빌려 찍었다. 땅 주인은 돈 들여 태우려던 풀밭을 대신 제거해 줘서 고마워했다는 후문이다.
배우들은 촬영 전에 2주동안 군사 훈련을 받았다. 군복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군복천을 납품했던 업자에게서 당시 군복천을 구입해 제작했다. 대포도 M1 소총처럼 베트남에서 대여했다.
특이한 것은 병사들의 눈 높이에서 풀밭을 지나는 장면이다. 이를 위해 맬릭 감독은 23미터 길이의 아킬라 크레인을 사용. 바닦이 울퉁불퉁해 돌리 트랙이나 스테디캠 사용이 힘들었기 때문. 모니터를 보며 원격조정하는 아킬라 크레인은 풀밭을 뛰어가는 장면 등에서 일정 높이를 유지하며 흔들림없는 촬영이 가능했다.
촬영은 대부분 자연광을 이용했다. 원작자인 제임스 존스 유족들은 원작의 훼손을 우려해 영화화를 반대했으나 맬릭 감독이 여러번 설득했고, 유족들이 감독의 이전 작품들을 본 뒤 영화화에 동의했다.
개들이 전사자를 뜯어먹는 장면. 개 뿐만 아니라 일본군은 뉴기니 등에서 굶주림에 시달려 적군의 시체는 물론이고 원주민이나 동료를 잡아먹기도 했다. 촬영은 모두 코닥의 텅스텐 필름을 사용.
이 영화에는 독특하게 강철 빔 연주가 들어갔다. 길이 12미터의 H빔 형강에 3개의 줄을 매서 연주한 것으로 전투장면 음악 등에 쓰였다.
맬릭 감독은 풀밭에 아주 신경을 써서 촬영 두 달 전에 비행기로 비료를 뿌려 풀이 웃자라도록 했다. 특히 배우들은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군복과 촬영용 내의 등을 촬영 기간 내내 빨지 않고 계속  입어 냄새가 진동했단다.
빌리 밥 손튼은 3시간 가까이 내레이션 녹음을 했으나 실제 영화에는 모두 배우들의 녹음으로 바뀌어 그의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게리 올드만, 비고 모르텐슨, 마틴 쉰, 믹키 루크의 출연 장면도 모두 편집돼 사라졌다. 블루레이에 수록된 삭제장면에서 믹키 루크의 출연 장면을 볼 수 있다.
"당신들 미군은 과연 정의로운가요?" 죽은 일본군 병사의 얼굴 위로 흐르는 대사가 아주 강렬한 느낌을 준다. 실제 배우를 땅에 묻고 촬영한 장면. 에드워드 노튼은 출연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했다.
6개월간 이어진 과달카날 전투에서 일본군은 2만8,000여명이 죽고 미군은 1,500명이 전사했다. 과달카날은 16만명의 원주민이 살지만 부족간에 폐쇄적이어서 무려 60종의 언어가 쓰인다.
미군은 일본군이 건설한 룽가비행장을 빼앗아 미드웨이 해전에서 전사한 급강하폭격기대대 지휘관 로트폰 핸더슨 소령의 이름을 따서 핸더슨 비행장으로 명명한 뒤 활주로를 늘렸다.
비행기 일부는 파이버 글래스를 이용해 만들었고, 와일드캣 전투기는 프라모델을 조립해 확대해 사용했다.
유난히 동식물에 관심이 많은 맬릭 감독은 영화 곳곳에 현지 야생식물과 동물들을 인서트컷으로 사용.
원래는 애드리언 브로디가 맡은 배역이 주인공이었으나 촬영에 들어가면서 제임스 카비젤이 맡은 배역으로 바뀌었다.
과달카날 앞 해역은 미군 항모 호넷, 와스프를 비롯해 연합군과 추축군 함정 43척이 침몰해 '이언 보텀 사운드', 즉 강철 바닥 해협이라고 불린다.
씬 레드 라인 (1Disc)
존 트라볼타 출연/조지 클루니 출연
씬 레드 라인 : 블루레이
숀 펜 출연/애드리언 브로디 출연/Terrence Malick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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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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