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울프팩 2012. 6. 30. 16:35
모든 슈퍼 히어로물은 벤담의 공리주의에 기반한다.
벤담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목표로 한 양적 공리주의를 주장하며,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선행을 통해 개인이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는 가진 자들의 의무인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부가 됐든 권력이 됐든 또는 지적,육체적 능력이 됐든 남보다 월등 많이 가진 사람들은 여럿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기여하는 도덕적 책임감이 의무처럼 따른다.

스파이더맨이  쫄쫄이 의상을 입고 거미줄을 쏘고, 슈퍼맨이 바지 위에 팬티를 입고 하늘을 날며, 배트맨이 망토를 휘날리며 밤길을 내달리는 것도 공리주의에 입각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다른 표현들이다.
이는 곧 끝없는 이익 추구로 부의 집중을 용인한 자본주의가 못가진 자들을 무마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철저한 자본주의 이론가였던 벤담이 나름 복지 해결을 위해 공리주의를 주장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만큼 슈퍼 히어로물의 공식은 하나일 수 밖에 없다.

선량한 다수를 괴롭히는 못된 악당을 권력이 베푸는 복지 차원에서 내 몸 돌보지 않고 혼내주는 것.
마크 웹 감독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이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스파이더맨은 까마득한 마천루 사이를 누비며 도마뱀으로 변한 돌연변이 악당과 사투를 벌인다.
그러나 허공을 가르는 액션은 아찔하면서도 시원하지만 왠지 공허하다.

공리주의를 거론하는게 민망할 만큼 악당의 악행이 황당하고 느닷없기 때문.
이야기의 기본 축이 흔들린 것도 모자라 스파이더맨마저 전작들에 비해 경박스러워졌다.

샘 레이미와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현실에 기반을 둔 고뇌하는 20대 청춘이었다면, 앤드류 가필드가 연기한 이번 작품의 스파이더맨은 천방지축 철없는 10대 청소년이다.
참을 수 없는 스파이더맨의 가벼움은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호기심 많은 조지'의 원숭이 같다.

그만큼 전작보다 지루하고 이야기의 개연성도 떨어지며 주인공의 스타성 마저 부족하다.
전작들보다 나아진게 있다면 엠마 스톤이 연기한 여주인공과 손으로 한땀 한땀 바느질해 만든 옷치고는 너무 훌륭한 스파이더맨의 쫄쫄이 의상 뿐이다.

샘 레이미의 시리즈물을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마디로 이번 작품은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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