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베트남의 호치민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여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 부유했던 중국 청년과 사랑에 빠졌다.
당시 그의 나이는 16세였고, 중국 남성은 30대였다.
그 잊지 못할 이야기를 소설로 쓴 작품이 바로 '연인'이고, 이를 장 자크 아노 감독이 같은 제목의 영화(L'Amant, 1992년)로 만들었다.
CF 감독 출신인 아노는 베트남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살 떨리는 두 사람의 사랑을 탐미적이고 관능적인 카메라워크를 통해 아름다운 영상으로 재현혔다.
가난한 어린 여인과 돈 많은 중국 청년의 연애는 단순 사랑 이야기를 뛰어넘어 당시 인도차이나에 흐르던 빈부 격차와 인종 문제까지 다뤘다.
여기에 어린 여인에 대한 집착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로리타'를 연상케 한다.
국내에는 작품 개봉 당시 이 작품의 과감한 성애 묘사 때문에 에로물로 알려졌다.
실제로 남녀 주인공을 연기한 양가휘와 제인 마치는 전라 연기는 물론이고 헤어누드로 농염한 정사 장면을 보여준다.
그 바람에 가슴아픈 사랑이야기는 뒤로 묻혔지만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뒤라스의 원작 소설을 훌륭한 영상으로 재현한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연출력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이 작품 외에는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한 제인 마치의 풋풋한 매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막판 피아노 선율로 흐르는 쇼팽의 곡을 들으며 흐느끼던 모습은 진정한 사랑을 잃은 아픔이 그대로 전해져 가슴을 아리게 한다.
아마 제인 마치는 영원한 '연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강렬한 울림을 갖고 있다.
1080p 풀HD의 1.8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무삭제, 노모자이크로 출시됐으며 화질은 최신작들보다 떨어지지만 DVD 보다 월등 좋다.
잡티가 보이고 원경 디테일이 떨어지며, 특히 밤 장면에서 노이즈가 심하다.
음향은 DTS-HD 2.0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으로 제작과정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메콩강을 건너는 나룻배는 버스와 자동차를 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직접 제작했다. 2,000벌이 넘는 영화 속 의상과 자전거 등 각종 소품도 직접 제작해 사용. 1929년형 검은 리무진은 세계 15개국을 돌며 찾은 끝에 미국 시애틀에서 발견해 파리로 옮긴 뒤, 차 내부 장면을 찍을 수 있도록 개조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10대 시절 베트남에 살며 겪었던 이야기를 자전적 소설로 펴낸 이 작품으로 1984년에 콩쿠르 상을 받았다. 1930년대 초반 프랑스로 옮긴 뒤라스는 레지스탕스였던 로베르 앙텔므와 결혼했으나 1944년 남편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뒤 공산당에 가입해 포로들을 돕는 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은 여주인공을 찾기 위해 전세계 하이틴 잡지를 뒤지고 수천 명을 오디션 한 끝에 당시 18세였던 제인 마치를 찾아냈다. 아노 감독은 미국에서 출판한 '연인' 책 표지에 실린 뒤라스의 10대때 사진과 너무 닮아서 그를 캐스팅했다. 양조휘가 아주 조금씩 손가락을 움직여 소녀의 손을 잡는 장면은 아주 내밀한 사랑의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제인 마치는 1993년 15세 연상의 왕화제작자 카르민 조소라와 결혼했다가 2001년 이혼했다. 아노 감독은 작품 분위기를 익히기 위해 베트남에 1년간 머물렀다. 이 작품에는 빈부격차와 인종문제,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까지 얽혀 있다. 뒤라스가 다닌 고교는 이름만 바뀐채 그대로 남아 있다. 베트남의 사이공은 유럽 국가들이 식민지에 건축물을 세울 때 적용한 콜로니얼 양식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콜로니얼 양식은 중세 유럽 분위기를 현지 건자재를 이용해 현지 풍토에 맞게 변형했다. 카메라는 음모까지 노출하는 끈끈한 정사씬을 극단적인 클로즈업이나 숨죽인 채 숨여서 지켜보는 것처럼 고정된 앵글로 집요하게 잡아냈다. 어린 시절 장면은 뒤라스가 불어 교사였던 어머니와 함께 실제 살았던 사덱 마을서 촬영. 뒤라스는 1946년 남편과 이혼한 뒤 공산당에서 제명됐다. 이후 반 드골 운동을 펼쳤고 1968년 5월 혁명에도 참여했다. 하루에 6리터의 와인을 마시며 글을 썼던 그는 말년에 알코올 중독과 간경화로 고생하다가 1996년 사망했다. 여주인공이 작은 오빠와 지나치게 친밀한 춤을 추면서 연인의 분노와 질투를 유발한다. 이 장면을 위해 제인 마치는 몇 달간 춤을 연습했다. 뒤라스의 모친이 맹그로브 나무로 방파제를 만들려고 했던 마을은 캄보디아 국경 근처에서 찍었다. 이를 위해 헬기로 자재와 인력을 수송했다. 뒤라스의 가족은 모친이 수몰지구인 해안가 땅을 잘못사는 바람에 어려워 졌다. 결혼식 장면도 중국 남자가 살던 마을과 가까운 사덱 지구에서 300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해 3대의 카메라로 찍었다. 제작진은 프랑스행 낡은 기선을 사이프러스에서 발견해 수에즈 운하를 지나 베트남까지 운송했다. 12세때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뒤라스는 알랭 레네 감독의 영화 '히로시마 내사랑' 시나리오도 썼다. 67세때 30살 차이가 나는 얀 앙드레와 연인이 돼 죽을 때까지 함께 했다. 주연을 맡은 홍콩배우 겸 가수 양가휘. '동사서독' '신용문객잔' 등에 출연했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지금은 많이 늙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16세였고, 중국 남성은 30대였다.
그 잊지 못할 이야기를 소설로 쓴 작품이 바로 '연인'이고, 이를 장 자크 아노 감독이 같은 제목의 영화(L'Amant, 1992년)로 만들었다.
CF 감독 출신인 아노는 베트남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살 떨리는 두 사람의 사랑을 탐미적이고 관능적인 카메라워크를 통해 아름다운 영상으로 재현혔다.
가난한 어린 여인과 돈 많은 중국 청년의 연애는 단순 사랑 이야기를 뛰어넘어 당시 인도차이나에 흐르던 빈부 격차와 인종 문제까지 다뤘다.
여기에 어린 여인에 대한 집착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로리타'를 연상케 한다.
국내에는 작품 개봉 당시 이 작품의 과감한 성애 묘사 때문에 에로물로 알려졌다.
실제로 남녀 주인공을 연기한 양가휘와 제인 마치는 전라 연기는 물론이고 헤어누드로 농염한 정사 장면을 보여준다.
그 바람에 가슴아픈 사랑이야기는 뒤로 묻혔지만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뒤라스의 원작 소설을 훌륭한 영상으로 재현한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연출력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이 작품 외에는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한 제인 마치의 풋풋한 매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막판 피아노 선율로 흐르는 쇼팽의 곡을 들으며 흐느끼던 모습은 진정한 사랑을 잃은 아픔이 그대로 전해져 가슴을 아리게 한다.
아마 제인 마치는 영원한 '연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강렬한 울림을 갖고 있다.
1080p 풀HD의 1.8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무삭제, 노모자이크로 출시됐으며 화질은 최신작들보다 떨어지지만 DVD 보다 월등 좋다.
잡티가 보이고 원경 디테일이 떨어지며, 특히 밤 장면에서 노이즈가 심하다.
음향은 DTS-HD 2.0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으로 제작과정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메콩강을 건너는 나룻배는 버스와 자동차를 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직접 제작했다. 2,000벌이 넘는 영화 속 의상과 자전거 등 각종 소품도 직접 제작해 사용. 1929년형 검은 리무진은 세계 15개국을 돌며 찾은 끝에 미국 시애틀에서 발견해 파리로 옮긴 뒤, 차 내부 장면을 찍을 수 있도록 개조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10대 시절 베트남에 살며 겪었던 이야기를 자전적 소설로 펴낸 이 작품으로 1984년에 콩쿠르 상을 받았다. 1930년대 초반 프랑스로 옮긴 뒤라스는 레지스탕스였던 로베르 앙텔므와 결혼했으나 1944년 남편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뒤 공산당에 가입해 포로들을 돕는 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은 여주인공을 찾기 위해 전세계 하이틴 잡지를 뒤지고 수천 명을 오디션 한 끝에 당시 18세였던 제인 마치를 찾아냈다. 아노 감독은 미국에서 출판한 '연인' 책 표지에 실린 뒤라스의 10대때 사진과 너무 닮아서 그를 캐스팅했다. 양조휘가 아주 조금씩 손가락을 움직여 소녀의 손을 잡는 장면은 아주 내밀한 사랑의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제인 마치는 1993년 15세 연상의 왕화제작자 카르민 조소라와 결혼했다가 2001년 이혼했다. 아노 감독은 작품 분위기를 익히기 위해 베트남에 1년간 머물렀다. 이 작품에는 빈부격차와 인종문제,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까지 얽혀 있다. 뒤라스가 다닌 고교는 이름만 바뀐채 그대로 남아 있다. 베트남의 사이공은 유럽 국가들이 식민지에 건축물을 세울 때 적용한 콜로니얼 양식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콜로니얼 양식은 중세 유럽 분위기를 현지 건자재를 이용해 현지 풍토에 맞게 변형했다. 카메라는 음모까지 노출하는 끈끈한 정사씬을 극단적인 클로즈업이나 숨죽인 채 숨여서 지켜보는 것처럼 고정된 앵글로 집요하게 잡아냈다. 어린 시절 장면은 뒤라스가 불어 교사였던 어머니와 함께 실제 살았던 사덱 마을서 촬영. 뒤라스는 1946년 남편과 이혼한 뒤 공산당에서 제명됐다. 이후 반 드골 운동을 펼쳤고 1968년 5월 혁명에도 참여했다. 하루에 6리터의 와인을 마시며 글을 썼던 그는 말년에 알코올 중독과 간경화로 고생하다가 1996년 사망했다. 여주인공이 작은 오빠와 지나치게 친밀한 춤을 추면서 연인의 분노와 질투를 유발한다. 이 장면을 위해 제인 마치는 몇 달간 춤을 연습했다. 뒤라스의 모친이 맹그로브 나무로 방파제를 만들려고 했던 마을은 캄보디아 국경 근처에서 찍었다. 이를 위해 헬기로 자재와 인력을 수송했다. 뒤라스의 가족은 모친이 수몰지구인 해안가 땅을 잘못사는 바람에 어려워 졌다. 결혼식 장면도 중국 남자가 살던 마을과 가까운 사덱 지구에서 300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해 3대의 카메라로 찍었다. 제작진은 프랑스행 낡은 기선을 사이프러스에서 발견해 수에즈 운하를 지나 베트남까지 운송했다. 12세때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뒤라스는 알랭 레네 감독의 영화 '히로시마 내사랑' 시나리오도 썼다. 67세때 30살 차이가 나는 얀 앙드레와 연인이 돼 죽을 때까지 함께 했다. 주연을 맡은 홍콩배우 겸 가수 양가휘. '동사서독' '신용문객잔' 등에 출연했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지금은 많이 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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